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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2월 22nd, 2013 | by 경계를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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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반기지 운동: 동아시아

미-일 전쟁동맹의 세계화 –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

배경

미국과 일본은 3년 반 동안 협의 끝에 지난 2006년 5월 1일 주일미군 재편 최종보고서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른 미-일 동맹의 변화와 이를 위한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 촉진이다.

이러한 미군재편의 필요성은 “대테러전쟁”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안보정책에 따라, 미국의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1>동맹국으로서 일본의 역할을 강화하고, 2>“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성을 증대하며 3>지역을 넘어선 세계적 차원의 군사작전과 4> ‘숫자가 아니 능력 중시’하는 원칙으로부터 제기되었다.

주일미군재편의 주 내용으로는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미 육군 제1군단사령부를 2008년까지 자마(座間)기지로 옮기되 통합사령부로 개편하기로 했다. 자마기지에 극동~중앙아시아~중동으로 이어지는 지역(이른바 ‘불안정한 활’)을 관할하 거점사령부(UEX)를 설치하고자 하는 미국 측의 계획은 ‘주일 미군 판 전략적 유연성’이다.

그러나 이는 미-일 안보조약의 ‘극동조항’(주일미군의 주둔목적을 ‘일본과 극동의 안전’에 국한함. 여기서 극동은 필리핀 이북까지임)과 충돌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헌법 9조 위반하며 추진되는 것이다.

또한 항공자위대 항공총대사령부를 2010년까지 도쿄(東京)에 있는 요코다(橫田) 미군기지로 옮겨 미사일방어(MD) 사령부 역할을 하도록 하고, 아쓰기(厚木)기지의 항모함재기는 2014년까지 이와쿠니(岩國)기지로 옮기기로 했다.

최대 쟁점이던 오키나와 헤노코 해상기지 건설 문제는 “2014년 완성을 목표”로 슈와브 기지 연안에 건설하기로 하였다. 오키나와에서의 기지건설 부담을 줄이기로 하면서 해병대 8천명이 괌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또한 가나가와현 요코스카(橫須賀) 기지에는, 핵항공모함을 배치될 예정이며 야마구치현 이와쿠니(岩國) 기지에는 항공모함 함재기부대가 이전되어 아시아 최대 미군항공기지가 건설된다.

주일 미군 재편은, 기존 미군 기지를 영구화하고, 자위대 기지나 연습장에 대해 미군과 공동사용.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통괄하는 육지·바다·하늘·해병 4군의 사령부와 실전부대를 일본에 집중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아랍지역, 아프리카 대륙 동쪽해안까지 군사개입을 할 수 있는 중축기지를 계획하고 있다.

반 기지운동 현황

- 주민투표의 힘, 이와쿠니 기지강화 저지투쟁

주일미군 재편합의에 따라 야마구치현 이와쿠니(岩國)기지에 미 항공모함 함재기부대가 이전되어 아시아 최대 미군항공기지가 건설하려는 계획이다.(2008년 활주로 확장공사 예정)이에 지역 주민들은 주민투표의 힘으로 미군기지 강화를 막아내고 있다.
지자체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미군기지에 대한 주민들의 암묵적인 불만을 표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총 투표율 58.8%의 투표율에 반대가 4만 5천 표로 약 95%가 반대표를 던졌다.(인구10만 8천) 지역주민 및 활동가들은 주민투표의 관건인 투표율을 높이는 것에 운동의 초점을 맞추어 활동해왔으며, 투표결과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와쿠니 의회는 기지확장 찬성을 밝히고 이와쿠니 시장은 태도를 바꾸었으며 당시 총리인 고이즈미도 주민투표결과에 의미를 두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기존의 조직을 “주민투표 결과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모임‘으로 개편하여 지속적으로 지자체와 정부를 상대로 한 운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 지자체를 움직인 주민들의 완고한 싸움: 요코스카 핵항공모함 이전 반대투쟁

일본의 오키나와 다음으로 미군기지 밀집지인 가나가와 현, 이 곳의 모든 지자체는 비핵도시를 선언 한 바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주일미군기지 재편 강화 계획을 발표하여 2008년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원자력 항공모함을 배치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주민과 해당지자체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요코스카 기지는 수도권 도쿄만의 입구에 위치해있고, 유일한 해외의 항공모함 모항이며 미 제7 함대의 항공모함 타격군의 출격 거점이다. 이미 항공모함 키티 호크를 중심으로 이지스·미사일 장비의 순양함 구축함 11척의 모항 되고 있다.

미 해군은 2005년 이 요코스카 기지에 키티 호크를 퇴역시켜 2008년에 원자력 항공모함 죠지·워싱턴을 배치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부시정권의 핵 선제 공격 전략의 일환으로 대북, 대중국 공격전랴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공겨까지 포괄하고 있다.

원자력 항공모함은 2기의 원자로를 필요로 하고 있어 이는 「움직이는 원자력 발전소」라고도 알려져 있다. 만약 원자력 항공모함이 요코스카에서 사고를 일으키면 수도권 3 000만명구의 반 약 1 500만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며 10년간에 120만에서 170만의 사람들이 암 그 외로 죽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군 기지나 일·미 군사 동맹을 찬성하는 시민들도 핵학공모함만은 안된다고 투쟁에 동참하였다.

요코스카 시장과 가나가와 현지사도 이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였는데 이들은 곧 찬성입장으로 변하였다.

주민들은 「원자력 항공모함 찬반 주민 투표 조례 제정」의 서명 운동을 전개하여 한 달간 4만을 넘는 서명을 모아 임시 시의회에서 조례 제정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요코스카시 의회에서 이것을 부결되었다. 그러나 4만 명(유권자 9명에게 1명)이라는 성과를 얻은 주민들은 자신감을 얻어 시의회를 조직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하는 주한미군 재편 – 평택, 군산, 무건리

배경 및 현황

미국과 한국간의 주한미군 역할 변경은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구상의 변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1990년 미 국방부는 3단계에 걸쳐 동아시아 주둔 미군을 감축하는 동아시아 전략구상을 의회에 제출했고 이 계획에 따라 한미연합사 야전사령부가 해체되고 1991년 11월까지 약 7천명의 주한미군이 철수하였다.

이후 주한미군의 추가 철수는 북핵문제로 연기되었고, 1995년 클린턴 행정부의 새로운 동아시아전략은 기존 동맹체제와 미군의 해외주둔을 유지키로 결정하여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한편 주한미군 감축문제와 주한미군의 역할변경 문제는 긴밀히 연관된 주제로 다루어져 왔는데, 1989년 이래 SCM(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주한미군의 지역역할 강화가 거론된 이래 한미 양국은 1995년 한미공동 연구를 거쳐 2003-4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의제화하였다.

FOTA에서는 주한미군 재배치 외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군의 ‘대북방어’ 주도, 주한미군은 ‘지역안정’ 기여 등 주한미군 역할 변경 문제가 논의되었다.

한미 양국은 FOTA를 통해 미2사단 등의 감축 및 신속기동군화, 용산기지의 평택이전과 기지통폐합 등에 합의하여, 2004년 10월 22일 3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문에 최종 서명하였고, 그 해 12월 문제의 주한미군재배치 관련 협정들이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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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미2사단의 평택이전과 재편, 용산 기지(미8군 사령부 등)의 평택이전과 재편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모든 미군 기지를 ‘전략적 유연성’, 즉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로의 성격변화에 적합한 방향으로 재편, 통폐합하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2008년을 전후하여 평택과 대구․부산 등 2개의 허브기지, 경기북부의 연합훈련센터와 군산 공군기지 등 소수의 전진작전기지로 통폐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용산기지와 미2사단이 이전하게 될 평택에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등 용산기지의 사령부 외에 2사단 사령부와 예하 여단, 제1중여단전투팀(HBCT) 본부 등 주한 미 지상군 주력 전투부대가 모두 집결하게 된다.

또한 2004년까지의 FOTA합의에 따라 2005년 미국은 미2사단을 해외주둔 미군 최초로 사단과 군단기능을 통합한 ‘미래형 사단’(UEX, Unit of Employment X)으로 전환하였다. 특히 미2사단 산하의 제1여단은 이미 기존 여단보다 2~3배 전력이 강화된 중무장한 ‘미래형전투여단’(UA, Unit of Action)으로의 재편을 완료하여 세계최초의 ‘슈퍼여단’으로 불리고 있다.

주한미군 재편은 이렇듯 미군의 군사혁신과 해외주둔기지재배치의 시범 케이스로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미래형 사단으로 전환된 미2사단은 C4I 및 무인정찰기(UAV)를 비롯하여 최신예 에이브럼스(AIM) 탱크, M270A1 최신예 다연장로켓시스템을 갖춰 현재 보다 훨씬 강화된 ‘정밀타격능력’과 ‘확대된 전장과 원거리에서의 작전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미래형 사단은 평시에는 1개의 여단만 보유하지만 유사시에는 하와이와 미 본토 등에서 한반도로 증강 투입되는 5개의 UA를 지휘하게 된다.

주한미군의 이러한 침략적 성격의 강화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이 관철되는 한-미-일 지역동맹을 공고히 하여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대북 공격성을 강화하여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참고 자료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www.spark946.org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2차 교양자료

대중적인 반대운동

한국정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한-미간의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을 뿐 만 아니라, 미군기지확장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공격적 역할 확대라는 점을 철저하게 은폐하며 이를 폭력적으로 추진했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며 4년 가까이 싸워왔다. 대추리 마을 안에서는 935일 동안 촛불행사를 하며 힘든 싸움을 이어왔다. 한국정부와 국방부는 2006년 5월 4일 수 만명의 공권력을 동원해 마을에 있는 대추초등학교를 부수고, 논에 철조망을 치고 구덩이를 만들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평생 농사짓고 살아온 농민들은 논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아픈 가슴을 달래야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대추리 이장이며 주민대책위 위원장인 김지태씨를 구속해 그는 7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또한 한국경찰은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며 대추리를 고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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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처음부터 이 땅을 군사기지로 내어 줄 수 없다고, 이 땅에서 죽겠다고 싸워왔지만 국방부는 주민들의 정당한 싸움을 보상금 문제로 호도하며 왜곡 선전해 왔다. 국방부는 지난 5월 4일 친 29km의 철조망에 더해 11월에는 2.8km의 철조망을 추가로 설치하고 마을의 집들을 철거했다. 이렇게 조금씩 주민들의 목을 죄어 오고 압력을 넣고 있으며, 집집마다 전화를 해 나가라는 회유와 협박을 일삼고 있다. 그렇게 우애 좋게 살던 마을이 파괴되는 과정은 주민들에게 엄청난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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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과 2007년 평택 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은 매우 중요하고 첨예한 대중적인 이슈가 되었고, 한국의 수많은 민중, 사회 운동은 헌신적으로 이 싸움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평화를 향한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외부세력의 불법 시위”로 매도하면서 치밀한 이데올로기적 분할 작전을 통해 운동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끈질기게 버텨오던 대추리 주민들은 결국 정부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정부와 ‘이주합의’를 하고(2007년 2월 13일)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한국사회전체의 모순을 떠 안은 대추리 50가구의 사람들은 원하지 않지만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다.

대추리 주민들은 일제시대, 미군정 시절 두 차례나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땅을 빼앗겼다. 그리고 결국 세 번째, 국책사업의 피해자가 되어 집단적 이주를 당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지만 주민들의 뒤를 이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대추리 사람들의 투쟁은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고, 역사에 빛나는 장으로 남을 것이다. 주민들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것처럼 민중, 사회 운동과 수많은 시민들이 야만적인 전쟁기지를 막아내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의 침략적 성격의 강화와 미군기지 재편은 한반도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투쟁의 이슈를 만들고 있다. 경기북부에 있는 파주 무건리, 오현리에 있는 한국군의 훈련장이 미군의 훈련을 위해 두 배 이상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당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군산에서도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침략적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와 기지재편은 한반도 곳곳에서 시민들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고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운동은 보편적인 평화의 문제로서 계속해서 이어져 확장될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기지 운동들의 단결과 연대,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지킴이들의 거주 운동

지난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은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저항하며 싸움을 만들어왔다. 그 중 마을안에서 주민들과 일상을 나누며 싸움을 이어간 ‘지킴이’들은 빈집을 수리하고 청소해 ‘거주’하는 방식을 택한 사람들이다.

주민들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고, 농사일을 배우며, 국방부의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생활공간을 대추리 도두리로 옮긴 것이다. 압도적인 물리력을 동원한 공권력의 침탈에 맞선 싸움이나 거리에서의 투쟁 뿐 아니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지난한 폭력들과 싸우고 주민들과 함께 생활을 이어왔다. 주민들이 이주하는 순간까지 대추리 도두리에는 약 15명의 ‘지킴이’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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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들은 대추리 도두리를 새롭게 채워지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빈집을 수리하고 청소해 다양한 공공시설, 문화시설을 만들었다. 찻집, 사진관, 어린이 놀이방, 마을 도서관, 마을 방송국, 주민역사관 등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힘든 싸움의 과정을 지지/지원하고자 했다.

마을의 빈집을 고치고 청소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대추리 도두리가 떠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채워지는 공간이며, 전쟁세력에 맞서 평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싸우며 살아가는 마을임을 대중들에게 알려나가는 과정이었다. 그 시간들은 ‘대추리 도두리 평화촌’이라는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냈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의 고유하고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킴이들의 거주운동은 그 자체가 합법/불법의 경계를 허무는 불복종운동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간을 채우고 방치되어있는 빈 건물을 되살리는 공간재생운동이다.

필리핀 – 미군이 남기고 간 재앙, 환경오염

두 개의 핵심 미군기지

1947년 MBA 협정(Military Bases Agreement: ‘99년 동안 사용료 지불 없이’ 필리핀 전역에 23개의 기지 및 군사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 으로 법적인 지위를 얻게 된 미군은 본격적인 기지건설 작업을 시작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를 겨냥하여 루손 섬에 집중된 기지는 크게 수빅 해군기지와 클락 공군기지이며 바기오 등 주위 도시에도 오락, 레이다 기지, 통신 시설, 미군묘지 등의 여러 미군 시설들이 설치하게 된다.

이 두 기지는 미합중국 태평양 사령부의 직접 관할아래 인도양, 동남아시아, 북동아시아 전 지역을 연결하는 중앙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두 기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치러진 미국의 전쟁, 특히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수빅 해군 기지(Subic Naval Base)는 과거 스페인 정부에 의해 사용되었던 해군항이었고, 2차 세계전쟁 이전까지 잠수함 관련 시설과 해군하응로만 사용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쿠비 해군비행장을 갖추며 복합시설을 갖춘 거대한 해군기지로 확대되게 되었는데, 이후 수빅기지는 서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7함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 클락공군기지(CLarck Air Base)는 루손 섬의 팜팡가 지역의 넓은 평야에 자리 잡고 있으며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이 있었던 1898년 미군 기병대의 훈련 장소로 쓰였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 식민지 시절부터 계속 기지의 확장이 있었고 1919년부터 본격적인 공군기지로서 시설들을 갖추게 되었다. 1947년 MBA협정이 체결된 이후, 팜팡가 지역과 딸락 지역 일대는 항공로, 발전소, 격납고 등의 시설을 갖추며 미국의 13공군기지로서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의 공군기지로 확장되었다.

클락기지는 남아시아의 유일한 미 공군기지로서 인도-태평양 전체를 관장하였다. 태평양 미 공군사령부(Pacific Air Forces Command)의 지휘아래 55 부대의 홈베이스며 전술전투비행단과 전술 공수비행단이 있었고, 태평양 일대의 모든 미군과 군수품을 운반할 수 있는 10,500 foot의 활주로를 갖고 있으며 최상의 폭격 훈련장도 인근해 위치해 있다.

필리핀 민중의 승리 – 미군기지 철수

1991년 냉전의 해체로 미국은 기지축소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내에서도 미군기지에 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진행되었고, 이는 1980년대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거센 민주화 운동과 결합하여 주요한 사회운동의 이슈가 되었다.

코라손 아끼노(Corazon Aquino)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87년 2월 헌법이 개정되면서 ‘91년 미군기지의 사용만료 이후 상원의 찬성과 국회가 요구하여 국민투표를 통한 비준을 제외하곤 필리핀 영토에 외국군 기지나 군대, 군 시설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 헌법은 91년 미군기지 사용 기간 만료 이후 미군기지 철수의 중요한 바탕이 되지만 한편으로 기지주둔의 연장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필리핀 정부와 미국은 기지협상을 시작하였는데, 1991년 6월 12일 팜팡가 지역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클락 기지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자 미군은 즉시 클락기지를 포기하였다.

수빅 기지만 협상 대상이 되어 사용기간을 10년 연장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끼노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으나 이 조약은 헌법에 따라 상원의 승인을 거쳐야 했다. 상원의원의 결정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거대하고 폭발적인 기지반대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는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마르코스 독재정권 반대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확장된 것이었다.

결국 기지사용만료일인 1991년 9월 16일 상원의원 23명은 투표를 통해 기지연장을 거부하게 되었다. 기지연장을 위해 상원의 2/3이상인 16명이 찬성해야 하지만 투표결과 찬성 11표, 반대 12표로 기지연장은 거부되었다.

미국이 남기고 간 재앙 – 죽음의 우물

91년 9월 16일 역사적인 상원의원의 기지연장 거부 결정 이후, 필리핀의 미군기지는 모두 철수되었다. 그러나 기지철수이후, 기지주둔으로 인해 일어난 ‘환경문제’는 매우 심각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심각한 인권침해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91년 6월 12일 팜팡가 지역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였고 미군은 서둘러 철수하였다. 피나투보 산에 살던 많은 원주민들을 비롯해 팜팡가와 딸락 지역 일대에는 2만여 세대의 난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정부는 철수한 기지 안의 CABCOM(Clark Air BaseCommand 이하 캄콤)에 난민촌을 만들게 되는데 약 7천 세대가 캄콤에 설치된 난민촌에서 천막이나 미군이 사용했던 막사 등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203개의 펌프 우물을 파 이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게 했다. 캄콤에 거주하던 난민들은 이 물에 기름이 뜨고 색이 이상하며 냄새도 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던 그들은 그냥 그 물로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부터 캄콤 안에는 자꾸만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2, 3일 만에 아이들은 고열과 설사를 앓다 죽어가고 임산부들의 유산이 잦아졌다.

어른들도 피부병 등을 앓기 시작했다.하루에도 두세 명의 어린 아이들이 죽었고 캄콤으로 오기 전까진 멀쩡했던 아이들도 앓기 시작했다. 태어난 아이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말을 하지 못하고 걷거나 서지도 못했다. 그 재앙은 바로 캄콤의 땅에 만든 우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원래 캄콤 일대는 클락 기지의모터폴(motor pool)로 사용되었다. 온갖 차량들이 이곳에서 연료를 공급받고 수리를 하였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기름이나 화학물질들은 바로 땅 밑으로 흘러들어갔고 캄콤의 난민들은 그 물을 마시고 생활한 것이다. 이후 전문가들은 조사를 통해 그 물과 땅에 납,수은, 질산, 석유, 기름 등이 포함된 것을 밝혀냈다.

캄콤에서 가까운 지역에 살았던 이들의 비극은 이주 뒤에도 계속 되었다. 또한 정부에 의한 주민 이주 이후에도 캄콤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그 아이들에게도 소아마비 등의 질병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 몸 안에 축적된 독극물들이 계속 후세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녹색연합 www.greenkorea.org 자료실 미군기지

- 마지막으로 고친 날 : 2008년 1월22일
- 만든 곳 : 경계를넘어(www.ifis.or.kr), 사회진보연대(www.pss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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