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Pakistan Violence

Published on 3월 29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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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붉은 사원 진압 이후 끊이지 않는 죽음의 행렬

마치 이런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중심부에 위치한 ‘랄 마스지드(Lal Masjid)’ 사원은 평소 ‘붉은 사원(Red Mosque)’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원에서 들려오던 경전 읽는 소리와 어린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귀를 찢는 듯한 총성과 비명, 통곡 소리로 뒤덮인 지 8일 만인 지난 7월 11일, 붉은 사원에서의 정부군과 학생들 간의 일촉즉발의 대치는 결국 대다수가 어린 학생들인 최소 108명의 사망자를 낳은 유혈 참극으로 끝이 나고야 말았다. 정부군이 ‘침묵(Silence)’이라는 작전명 하에 전격적인 진압작전을 전개한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진압이 끝나고 이틀 뒤 파키스탄 정부군은 사원 내부를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원 곳곳은 시체는 물론이고 핏자국까지 이미 말끔히 지워진 상태지만, 부서진 첨탑과 검게 그을린 건물들, 벽에 박힌 무수한 총알 자국과 한쪽에 수북이 쌓인 탄창 등은 진압군과 학생들 사이의 치열했던 생사의 공방전을 생생하게 드러내주고 있다고 한다.

그와 함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도 이번 붉은 사원 유혈참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TV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우리는 어떤 사원이나 ‘마드라사(아랍어로 학교를 뜻한다)’도 붉은 사원처럼 잘못 활용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며, “근본주의와 극단주의가 존재하는 곳은 그 곳이 어디든 반드시 끝장을 내고 분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나라 안팎을 통틀어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당신이 과연 그럴만한 배짱과 능력이 있기나 해?’하는 냉소와 ‘할 수 있으면 어디 그렇게 해보시지’하는 분노와 독기를 품은 목소리가 사회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붉은 사원의 유혈진압은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전쟁’의 성공적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아니라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드리운 파괴와 죽음의 그림자가 이웃나라 파키스탄으로까지 본격적으로 뻗어나가는 비극의 서곡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그동안 그와 그의 정부가 보여준 무능과 비민주적인 행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서서 충성을 다하는 비굴한 자국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봐왔던 국민들의 배신감과 모욕감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일보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1999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을 당시 새로 등장한 군부 쿠데타 정권에 대한 파키스탄 국민들의 반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전임 총리 나와즈 샤리프(Nawaz Sharif)와 또 그의 전임 총리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두 민선 정권의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워낙 컸던 탓에 그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으로 바뀌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민주적인 선거를 거쳐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채 장기 집권을 위한 권력의 강화에만 힘 쏟았고,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 또한 더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뒤로 후퇴해 가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2001년 9/11 사건이 터졌다. 9/11의 주범으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알 카에다 조직을 지목한 미국 부시 정부는 그들이 ‘은신’해 있다고 알려진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을 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려면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무슬림 국가에다 양국의 상당수 부족들이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파키스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당시 파키스탄은 전 세계적으로 탈레반 정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단 두 나라 중 한 나라였다. 이에 미 부시 정부는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한다. 우리 편이 되든지 아니면 적이 되든지 선택하라고 말이다. 그 때 무샤라프가 내린 선택은 세계 초강국 미국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초강대국의 품에 안긴 대가는 달콤해 보였다. 미국 정부는 무샤라프 정권에게 수십억 달러의 원조금과 F-16 전투기 등의 현대식 무기를 ‘하사’했으며, 부시 대통령은 수시로 그를 불러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그 돈과 무기는 자신의 권력 기반인 군부 강화를 위해 쓰였다.

그러나 무샤라프 자신도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경멸 가득한 눈초리를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 등을 초래한 미국과 그 연합국들의 ‘테러와의 전쟁’이 사실상 무슬림 사회 전체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이자 문명의 적이라는 편견과 가정 하에 진행된다는 현실에 분노하는 자국 내 무슬림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붉은 사원 사태의 핵심 인물인 두 형제 성직자 압둘 라시드 가지(Abdul Rashid Ghazi, 진압작전 당시 정부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붉은 사원의 지도자)와 마울라나 압둘 아지즈(Maulana Abdul Aziz, 정부군과 대치하는 도중 부르카를 입고 탈출하려다가 체포되어 미디어의 조롱거리가 된 인물)와 같은 급진적인 무슬림들의 주장, 즉,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최고의 법률로 채택할 것,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여성들을 엄벌에 처할 것, 음악과 영화 같은 모든 서구 문화를 금지할 것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점점 큰 지지를 얻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세속 이슬람 사회인 파키스탄에서 젊은이들에게 별다른 큰 반향을 못 일으켰을 텐데 말이다.

국영 신문인 ‘더 뉴스(The News)’의 금요일자 보도에 따르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만 88개의 이슬람신학교에 1만 6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이 중 탈레반을 지지하고 반서구 성전을 주장하는 ’데오반디(Deobandi)’ 계통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수는 작년 한 해에만 두 배가 늘었다. 붉은 사원에 속해 있는 두 개의 신학교 학생들도 1만 7백 명에 달하며, 또 다른 종교 학교(마드라사)에 등록된 학생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다른 74개 종교 학교 전체 학생 수와 맞먹는 5천 39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가지 형제와 같은 성직자들의 영향을 받아 점점 급진화되고 과격해져갔다. 이슬라마바드의 ‘카이드-이-아잠(Quaid-e-Azam)’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 페르베즈 후드브호이( Pervez Hoodbhoy)교수가 웹진 ‘Znet’ 6월 12일자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붉은 사원의 학생들은 대학이 성매매 집결지로 변했다며 부르카를 쓰지 않는 여학생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했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은 서구 음악과 영화를 판매하는 음반 가게와 비디오점을 찾아다니며 주인을 협박하고, 침술원에서 일하던 중국인들 9명을 납치하기도 했다. 침술원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한 무샤라프 대통령의 대응은 기회주의 그 자체였다. 대외적으로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협력한 데 대한 국내의 반발이 확산될까봐 일부 급진적인 무슬림 지도자들과 학생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눈감아준 것이다. 아니, 단순히 눈감아 준 것이 아니라 붉은 사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번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세력을 키워왔었다. 대형 모스크와 두 개의 신학교와 종교 학교, 공공 도서관에 가지 형제의 집까지 딸린 드넓은 붉은 사원 단지가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지어져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운영되어 왔다는 게 단적인 하나의 예일 것이다.

그러면, 무샤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태도를 바꿔 붉은 사원에 대한 강경진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스스로 택했다기 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의 약속대로 라면 파키스탄은 올 해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아프간 침공에 협조한 부분이나 급진적인 무슬림들의 극단적인 행동의 증가뿐만 아니라 무샤라프 정권은 민주화와 인권 개선이라는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해 있다. 특히, 올 해 3월,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침해를 조사하려던 이프티크하르 무하마드 초드리(Iftikhar Muhammad Chaudry) 대법원장을 해임한 직후부터 그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그로 인해 초드리 대법원장이 국민적 영웅으로까지 떠오르는 과정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력이 얼마나 취약해지고 있는 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미국과 EU, 캐나다 등 아프간에 군대를 파병해 전투를 치르고 있는 서구 국가의 정부들은 아프간의 상황이 유리해지기는커녕 저항세력의 반격이 날이 갈수록 거세어지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파키스탄 정부의 탓으로 돌리며 무샤라프 대통령을 압박해왔다. 즉, 아프간 저항세력들이 파키스탄 내의 지지자들로부터 무기와 자금, 전투원을 조달받고 있음에도 파키스탄 정부가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미국 정부조차도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끊을 수도 있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대외적으로는 급진 이슬람 세력을 방치하고 있다는 서방 강대국 정부들의 의혹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사원의 하늘을 뒤덮던 폭발음과 화염은 가셨고, 사망자들의 시신은 인근 공동묘지에 가매장되었다. 과연 그들 모두가 정부와 언론의 주장처럼 급진적인 이슬람 전투원들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성소를 지키려 했던 자신들의 신앙에 충실한 학생들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쌓여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번 붉은 사원의 비극 또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벌이고 있는 증오와 피의 잔혹극의 일부라는 것, 부시 대통령의 공언처럼 그들의 전쟁이 낳은 참화는 비단 아프간과 이라크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같은 다른 나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미 국무부 대변인 션 맥코맥(Sean McCormack)은 이번 사태 직후 무샤라프 대통령이 “엄청난 인내를 발휘해” 사태를 해결했다며 치하했다고 한다.

[사건 일지]

– 2007년 1월 : 정부가 무허가 건물이라며 붉은 사원의 모스크와 학교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항의해 수십 명의 여학생들이 이슬라마바드 공공 어린이 도서관 점거.

– 3월 27일 : 여학생들이 세 명의 여성과 두 명의 경찰관을 성매매업소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납치. 그들이 잘못을 참회하자 풀어줌.

– 4월 6일 : 붉은 사원 자체적으로 이슬람 샤리아 법정을 설치함. 사원의 고위 성직자 Maulana Abdul Aziz는 정부가 자신을 탄압할 경우 수 천 건의 자살공격을 하겠다고 공언.

– 4월 9일 : 샤리아 법정은 프랑스에서 열린 자선고공낙하 행사에 참석해 남성 교관과 포옹하는 장면이 신문에 보도된 파키스탄 관광장관인 Nilofar Bakhtiar에 대해 종교 칙령인 파트와(Fatwa)를 내림.

– 4월 10일 : 정부가 사원의 웹사이트와 라디오 방송을 차단.

– 5월 19일 : 수십 명의 사원 지지자들이 체포된데 항의해 학생들이 여섯 명의 경찰관을 납치. 그들 모두는 무사히 풀려남.

– 6월 23일 : 6명의 중국 여성과 한 명의 중국 남성을 포함해 침술원에서 일하던 9명의 종업원을 납치. 학생들은 침술원이 사실상 성매매 장소로 쓰였다고 주장. 중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모두 풀려남.

– 7월 3일 : 보안군과 학생들이 거리에서 충돌하면서 긴장이 격화됨. 최소 9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

– 7월 4일 : 보안군이 사원을 완전히 포위하고 무조건적인 항복과 인질 석방(그러나 실제 인질이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불분명)을 요구. 사원의 두 명의 최고위 형제 성직자 중 아지즈는 부르카와 하이힐을 신고 빠져나가려다 체포, 동생 압둘 라시드 가지(Abdul Rashid Ghazi)가 학생들을 이끎.

– 7월 10일 : 협상이 결렬된 직후, 보안군이 사원에 진압하기 시작. 성직자 가지를 포함해 최소 50명의 사원 내 사람들과 8명의 군인 사망.

– 7월 19일: 사망자 수와 신원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 보도에 따르면 최소 108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 지난 주말 동안 정부에 항의하는 폭탄공격으로 70여명 사망.

2007년 7월 19일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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