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no image

Published on 3월 29th, 2013 | by 재훈

0

[칼럼] 2007년, 잊지 말아야할 이름 – 소말리아 그리고 다르푸르

문제1) 다음 가운데 유럽에 있는 나라가 아닌 것은?
①스페인 ②부탄 ③스웨덴 ④아일랜드

문제2) 다음 가운데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가 아닌 것은?
①자메이카 ②부르키나파소 ③앙골라 ④라이베리아

여러분은 유럽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또 여러분은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 하면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그러면 왜 아프리카에서는 전쟁과 굶주림이 끝나질 않는 걸까요? 정말 굶주리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그 아이들이 왜 굶주리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싶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적어서 오늘은 소말리아와 수단에 관한 얘기만 잠깐 해 볼게요.

블랙호크다운과 소말리아

여러분 혹시 영화 [블랙호크다운] 보셨나요?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소말리아입니다. 1993년 미국은 악당을 잡겠다고 소말리아에서 전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미군 18명이 죽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군은 소말리아에서 철수하고 이때의 일을 ‘블랙호크다운’이라고도 부르는 거죠.

물론 영화는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군은 악당을 물리치려 했던 전우애가 강한 사람으로, 소말리아인들은 까닭도 없이 무작정 덤벼드는 이상한 무리들로 표현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군 18명과 함께 죽은 1천 여 명의 소말리아인들은 사소한 일일 뿐이었구요.

아무튼, 잘 알다시피 소말리아는 가난과 굶주림이 만연한 지역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권력을 잡고 있던 군벌들은 자기 이익만 챙겼죠. 그런데 UIC(이슬람법정연합)라는 조직이 생겨 영향력을 확대하였고, 지난 06년 6월에는 군벌들을 쫓아내고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하였습니다.

많은 민중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UIC가 소말리아의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자 오랫동안 혼돈이 가득했던 소말리아도 조금씩 안정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다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UIC가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 03년부터 이라크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는 미국이 또다시 소말리아에 전투병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그리고 소말리아 옆에는 미국의 손발이 되어 줄 에티오피아가 있구요. 민중들의 민주화요구에는 탄압과 살인으로 맞서던 에티오피아 멜라위 독재정권은 06년 12월24일 UIC를 무너뜨리기 위해 소말리아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에티오피아 군대를 훈련․무장 시켰고 이번에도 적절하게 사용한 한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에티오피아(소말리아의 왼쪽) 군대에게만 맡겨 두지 말고 자기도 힘을 한번 써 보고 싶었던지, 1월8일과 9일에는 지부티(소말리아의 위쪽)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비행기를 띄워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며 소말리아를 폭격했습니다. 그 결과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를 포함해 애꿎은 수 십 구의 시신을 남긴 겁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테러가 된 셈이죠.

이렇게 미국은 소말리아인들의 삶이나 의지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UIC를 몰아내고 소말리아에 친미 우파정부를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석유 생산지로써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 또 다른 거점을 하나 마련할 수도 있을 거구요.

잊지 말아야 할 이름, 다르푸르

100여 만 명이 죽임 당했던 94년 르완다 대학살의 뿌리가 벨기에+프랑스의 식민지배와 학살지원에 있듯이 현재 수단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영국의 식민지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주요한 방식 가운데 하나가 ‘분할통치전술’입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를 ‘수니:시아’로 나눠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 거죠. 수단도 마찬가지입니다. 1956년까지 수단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수단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들에게는 권력과 사회기반시설 등을 제공하면서 남부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에게는 소외와 차별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영향은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게다가 남부지역에서 석유와 각종 자원이 생산되었지만 자원 개발의 혜택은 북부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수단 정부에게만 돌아가고 남부지역에는 돌아가지 않았죠. 이러한 차별은 남부지역 주민들을 폭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83년부터 21년간 계속된 수단 정부군과 SPLA(수단인민해방군) 사이의 전쟁으로 약 200만 명가량이 사망하였습니다.

수단의 아픈 역사는 수단의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더욱 깊이 패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의 계속된 차별과 빈곤 등으로 2003년 다르푸르 지역에서 ‘수단해방군(SLA)’과 ‘정의평등운동(JEM)’ 등이 중심된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수단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자위드’라는 비정부군을 지원하여 학살에 나서게 했습니다. 4년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20여 만 명이 사망하고 2백여 만 명이 난민이 되었으며 4만 여개의 마을이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다르푸르의 학살과정에서는 강간이 만연해 잔자위드 소속의 남성이 다르푸르 지역 여성을 강간하면서 ‘검둥이들의 피를 없애 주겠다’ 등과 같은 발언까지 했다는 증언도 이어졌습니다.

수단 정부와 잔자위드의 범죄행위, 그리고 수십만이 죽건 말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면 무관심한 국제사회를 곁에 두고 오늘도 여린 목숨들이 하늘나라로 오르고 있는 거죠.

인류애가 살아있는 세계를 꿈꾸며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쉽게 ‘종족분쟁’과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말리아나 수단의 사례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주된 갈등의 뿌리는 강대국의 이해관계 그리고 국내의 정치적․경제적 차별과 빈곤 문제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지금의 깊은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먼 강대국들 중심의 국제관계가 아니라 인류애가 살아 있는 새로운 국제 관계를 만드는 것이겠죠. 그리고 해당 사회 내부에서는 차별과 빈곤의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할 거구요.

저에게 21세기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꼽아보라면 ‘9.11’보다는 다르푸르의 학살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 속에는 미국등 강대국들의 멈추질 않는 노략질에 대한 분노와 수십만의 죽음 앞에 무력한 저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2007년 1월 30일 미니

Tags: ,


About the Author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Back to Top ↑
  • stopADEX 2013 스케치 영상

  • 경계를넘어 메일링리스트


    경계를넘어의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경계를넘어 on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