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faisalshahzad_copy1

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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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러 권하는 사회

점차 증가하는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 사건들의 추악한 실상

“이웃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이는 제가 어릴 적, 동네 담벼락 어디엔가 붙어 있던 숱한 반공표어들 중 하나입니다. 제 나이가 올해로 서른 후반이니까 사실 그리 오래 전도 아닙니다만, 이제는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군요. 요즘 남북관계도 그렇고 인권,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 있어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을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그러나 저런 어처구니없는 표어가 국민의 세금으로 다시 도배될 지경까지 이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에이, 설마’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성만큼은 갖추고 있다는 믿음의 발로겠지요. 그런데, 한때(아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로 여겨왔던 미국에서는 바로 저런 류의 서로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독버섯처럼 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간첩’이란 단어가 ‘테러리스트’로 바뀐 채로 말이지요.

테러를 사주하는 FBI?

얼마 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연방지방법원에서는 지난 5월 1일 폭탄이 가득 실린 자동차를 타임스퀘어에서 폭파시키려다 실패한 파키스탄계 미국인 파이잘 샤자드(Faisal Shahzad)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미 언론들은 외부의 적이 아닌 미국 사회 내부의 ‘자생적 테러리스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대표적인 사례로 파이잘의 재판을 대서특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다른 법정에서는 별개의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재판이 동시에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뉴욕 브롱스(Bronx)에 있는 유대교당과 유대인 공동체센터에 폭탄을 숨겨두고 미사일로 파괴하려한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뉴버그의 4인(Newburgh Four)’에 대한 재판이었지요.

그런데 이 재판의 용의자들은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한 파이잘과는 확연히 다른 주장을 폅니다. 즉, 자신들은 애초에 범행을 저지를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누군가’의 사주와 매수에 의해 범행을 계획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미 연방수사국(FBI)의 정보원인 샤에드 후세인(Shahed Hussain)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7년 어느 날, 샤에드라는 사람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사는 뉴버그 빈민가에 나타납니다. 돈 많은 파키스탄 사업가를 자처한 샤에드는 자기가 파키스탄의 이슬람 무장단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떠들면서 지하드(성전)나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슬쩍 떠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의 그물망에 걸려든 사람이 제임스 크로미티(James Cromitie)라는 전과자였습니다. 샤에드는 제임스에게 유대교당을 폭파하면 25만 달러를 주겠다고 유혹했고, 협력자들을 더 모아오도록 시켰습니다. 그래서 조카의 수술비가 급했던 데이비드 윌리엄스(David Williams)와 중증 정신분열 환자까지 포함해 세 명이 더 걸려들었고, 그들은 샤에드가 준 폭탄을 싣고 가다가 FBI에게 체포되게 되죠. 그리고 FBI 정보원 샤에드가 그동안 녹음한 대화와 영상은 법정에 고스란히 핵심 증거로 제출되게 됩니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90퍼센트는 조작 사건

이는 네 사람을 기소한 미 검찰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검찰의 주장은 ‘이유야 어쨌든 폭탄 테러를 저지르려고 한 건 사실 아니냐, 그러니 테러리스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검찰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만약 경찰이 당장 돈이 급한 사람에게 ‘이 칼을 들고 강도질을 하면 1억을 줄께’해놓고 그가 칼을 쥐어들면 ‘네가 칼을 든 건 실제로 강도질을 할 마음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너는 강도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황당한 사건이 전혀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겁니다. 2007년 5월에도 뉴버그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이 채 안 걸리는 뉴저지 남부의 체리 힐에 살던 20대 청년 다섯 명이 역시나 비슷한 경우로 졸지에 테러리스트로 몰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알바니아 출신의 듀카(Duka) 형제 셋과 그의 친구인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 산에 가족여행을 갔다가 사격연습도 하고 눈싸움도 하면서 노는 장면을 홈비디오로 촬영했고, 그걸 기념 삼아 DVD로 만들려고 맡긴 비디오 가게 점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FBI가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번에도 마흐무드 오마르(Mahmoud Omar)라는 FBI 정보원이 그들에게 접근해 외국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미군에 맞서 싸우는 비디오를 다운로드 받게 하고 다른 정보원에게서 기관총까지 구입하게 한 다음, 그걸 몽땅 증거물로 해서 집 근처에 있던 포트 딕스 육군 기지를 공격하려한 혐의로 체포하게 되죠. 미국에서는 ‘포트 딕스의 5인(Fort Dix Five)’으로 알려진 듀카 형제와 그 친구는 모두 종신형에 추가 3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독방에 수감 중이라고 합니다. 그로 인해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한 이민자 가정의 아메리카 드림이 완전히 풍비박산 난 건 물론이구요.

자나깨나 정보원 조심, 불신 가득한 이민자 사회

이 외에도, 뉴버그 사건에서 등장했던 인물과 같은 정보원에게 걸려들어 테러조직 지원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피자가게 주인 등 유사한 사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35년간 FBI에서 일하면서 정보원들을 관리했던 제임스 웨딕(James Wedick)이라는 전직요원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가 언론을 통해 ‘또다시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 조직 적발’이라고 접한 사건들의 90퍼센트는 이렇게 미 정보당국에 의해 조작된 “쓰레기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아침에 자생적 테러리스트로 몰린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한/유색인/이슬람/이민자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지요.

그 때문에 미국의 가난한 이민자 사회 내에서는 점점 공포와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흔히 우리가 예상하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언제 나와 내 가족이 테러리스트로 몰릴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내 이웃이 미 정보당국의 끄나풀일지도 모른다는 불신입니다. 우리는 그런 공포와 불신으로 굴러가는 사회를 절대 제대로 된 이성적인 사회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불과 이삼십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웃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라는 표어를 주렁주렁 달고 살았던, 소나무 아래서 소주 한잔 걸치다 정부 욕 좀 했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간첩단의 일원으로 둔갑된 과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우리로서는 어째 남일 같지 않은 일들이 지금 미국에선 현실로 벌어지고 있답니다.

2010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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