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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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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파업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집트 무바라크 퇴진의 밑거름이 된 노동계급의 투쟁

“알-샵! 유리드! 에스갓 알-니잠!”(민중은 체제를 뒤엎고 싶다)

지난 3월 3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한 회의장에서는 일제히 구호가 터져 나왔다. 올 상반기 내내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서 울려 퍼진 이 짧고 강렬한 구호는 이제 그 어떤 화려한 연설보다도 더 민중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또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몰아내기 위해 쏟아지는 총탄 앞에서 맨 몸으로 맞섰던 이집트 민중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단순히 독재자 한 사람을 쫓아내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바로 그가 쌓아놓은 억압과 불평등, 착취라는 거대한 성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날 행사는 이집트 독립노조총연맹의 설립을 위한 준비회의였다. 이집트 전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노동자와 전문직 종사자들 가운데는 간호사와 의사들로 구성된 보건기술자연합, 연금생활자 연맹, 독립적 교사연합, 심지어 세금을 거둬들이는 부동산세 징수원 노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가 생겨난 지 채 2년이 안된 신생노조들이었다.

이집트 독립노조총연맹의 설립

원래부터 이집트에 노동조합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집트의 노동운동은 아프리카를 통틀어 가장 전투적이고 강력한 투쟁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한 가말 압델 나세르 전 대통령이 1957년도에 모든 노동조합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조합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던 노동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곤 했다. 그러는 동안, 유일한 합법 연맹인 관영 이집트 노조총연맹은 무바라크의 측근들의 자리를 보전해주는 이권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하의 24개 산별연맹 가운데 22개 연맹의 위원장이 무바라크 정권이 건네준 낙하산을 타고 온 측근들이었으며, 이들은 후세인 메가웨르 총연맹 위원장과 함께 부지런히 조합비와 뇌물을 주머니에 구겨 넣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립적인 민주노총의 설립은 그런 부패의 성벽에 커다란 균열을 내는 강력한 카운터펀치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이집트 시민들이 18일간에 걸친 대규모 민주화 항쟁 끝에 독재자 무바라크를 권력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집트 노동운동은 민주화로 향하는 열차에 무임승차한 승객이 아니라 그 열차에 시동을 걸고 끌고나간 엔진이었다. 흔히들 이집트의 민주화 항쟁을 이야기할 때 ‘독재 종식’, ‘30년간의 비상계엄 해제’, ‘민주적 개헌과 총선 실시’ 같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직접 거리에 몸을 내던진 노동자들의 역할과 계급적 요구를 빼놓고는 항쟁이 일어난 배경과 그 승리의 요인을 이해하기 어렵다.

부패의 상징이던 이집트 노조총연맹

이번 항쟁이 있기 십여 년 전부터 이집트에서는 파업과 점거농성, 태업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4년과 2008년 사이에만 약 1천 9백 여 건의 노동쟁의에 1백 7십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걸 비롯해, 지난 7년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통틀어 모두 3천여 건의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06년부터 수도 카이로 북쪽 마할라 시의 의류노동자들이 벌인 투쟁은 일체의 파업과 시위를 불법화한 비상사태 하에서 항상 깨지고 터지기만 하던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강렬한 희망의 빛이 되었다. 정부로부터 15%의 임금인상과 노동자를 해고할 때 반드시 노조와 협의한다는, 당시 이집트 현실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승리를 따낸 것이다.

이 소식은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싸우던 도시의 자유주의자들과 중산층 엘리트 청년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승리를 못 배우고 가난한 의류노동자들이 이뤄냈다는 것은, 아무리 두들겨도 끄덕없을 것 같은 독재정권도 뭉쳐서 싸우면 무너뜨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2008년에 다시 마할라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할 때는 도시의 청년들과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국적인 연대 총파업과 동맹휴업을 제안하는 글들을 부지런히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퍼다 날랐고, 마할라 총파업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흩어지지 않고 점점 폭넓고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들어갔다. 그리고 2011년 1월, 이웃 튀니지에서 독재자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은 1월 25일 전국 동시다발로 ‘분노의 날’ 시위를 벌이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했고, 시민들은 경찰의 곤봉과 총을 밀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걸로 화답했다. 이들이 바로 민주화항쟁 초기부터 지금까지 항쟁을 이끌어온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그룹이었다. 여기서 ‘4월 6일’은 다름 아닌 마할라 노동자들이 3년 전 총파업을 계획한 날이었다.

독재의 관 뚜껑을 덮은 것도 역시 노동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항쟁을 제안하고 이끌어간 건 을 비롯해 지금의 으로 묶인 청년 그룹들이었지만, 30년 독재의 관 뚜껑을 마지막으로 덮은 건 역시 노동자들이었다는 점이다. 무바라크가 물러나기 사흘 전, 전국의 공무원, 공기업, 운송, 석유, 의류, 관광, 언론 노동자들은 일제히 일손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2주 간의 시위로 인한 엄청난 재정 손실에 전전긍긍하던 자본가들이 먼저 무바라크에게서 등을 돌렸고, 중동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가는 유조선들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수에즈 운하가 폐쇄될까 좌불안석이던 서구 정부들이 무바라크를 버렸다. 끝까지 갈등하던 무바라크도 그제야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초라한 몰골로 권력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집트의 노동계급은 또다른 싸움을 위해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독립노조총연맹의 창립이 그 새로운 출발점이고, 그 다음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민주노동자당(Democratic Workers’ Party)의 결성을 통해 앞으로 치러질 총선에 참여하는 것, 그래서 전국단위로 월 200달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한편 기업 관리자들의 임금을 최저 임금의 열 배가 넘지 못하도록 하는 최대임금제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무바라크 밑에서 빌붙은 관료, 군인, 기업가들이 해외로 빼돌린 수백억 달러의 돈을 되찾아와 하루 2달러에 못 미치는 수입으로 연명하는 40%의 국민들을 위해 쓰여 지게 하는 것도 풀어야할 숙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을 가능케 만든 그들이기에 한번 기대를 걸어봄 직하다.

2011년 4월 26일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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