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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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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군사기지 건설, 누구를 위한 안보입니까

“세계의 평화는 강정에서부터!” 라는 구호가 절실한 이유

이제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싶던 지난 4월 6일, 제주 강정에서 날아온 소식에 그 봄 내음이 다 무색해졌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해경과의 승강이 도중 테트라포드 아래로 추락해 크게 다치셨다는 소식이었다. 강정포구 서방파제. 얼마 전 그곳 테트라포드 위에 앉아 바닷속으로 투하되는 케이슨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이 사이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강정에서 어디서든 늘 태산같이 버티고 계셨던 신부님이 눈 뜨자마자 “내가 죽었어야 강정이 살았을 텐데…” 하셨다는 이야기에 그만 눈물이 났다.

공권력이 상주하는 강정의 하루하루는 늘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긴장감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다. 있어선 안 될 곳에 경찰이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 수시로 실랑이가 일어나고 위험한 상황도 많이 연출된다. 강정마을의 사람들은 일상의 평화를 빼앗긴 지 오래다. 찬성-반대 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상처는 말할 것도 없다. 저 괴물 같은 해군기지가 ‘안보’를 핑계로 평화롭던 공동체를 다 망쳐놓고 있는 것이다.

디에고 가르시아 미군기지와 강제추방

군사기지 건설로 자신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고, ‘전략적 요충지’란 말에 인권을 유린당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허다하다. 인도양 차고스 제도에 있는 작은 섬, 디에고 가르시아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사용된 미군 항공기들의 주요 발진기지가 있는 곳이다. 구럼비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이 산호섬에 미군기지를 지으면서 일어난 일을 살펴보면 기가 막히다. 1966년, 중동과 남아시아를 감시할 수 있는 군사기지 부지를 물색하던 미국은 영국과 비밀 협상을 벌여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이곳을 임대해 기지로 사용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 계약에는 미국이 영국에 핵무기를 싸게 팔겠다는 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은 당시 UN에 이 섬에는 바위와 갈매기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그 결과 1971년 섬에 살던 5천여 명의 주민들은 인근 모리셔스 섬, 세이셀 제도 등으로 강제 이주당했고, 1973년 무려 섬 전체가 군사기지가 되었다. 한술 더 떠서 영국 당국은 누구도 허가 없이는 이 섬에 살거나 돌아가지 못하며 만약 이를 어기면 구금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법까지 만들었다. 주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자신이 살던 땅에서 당장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고, 제대로 된 보상이나 생계대책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 이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식민지 관리들은 주민들이 키우던 1천여 마리의 개들을 한곳에 모아 가스를 살포하고 불태워 도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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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한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산호섬 디에고 가르시아에 들어선 미군기지

2000년대 초반 이 섬의 주민이었던 올리비에 밴콜트가 이 사건을 영국 법정에 고발해 섬 전체에서 벌어진 강제퇴거 조치가 불법이었다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영국 정부는 불복하고 있고 미국 역시 모든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이 기지에는 군인 4천여 명이 살고 있으며 활주로와 핵 잠수함을 위한 선창, 군함 수십 척이 드고 날 수 있는 항구도 있다. 미군의 통신시설과 연료보급기지 등 여러 군 시설도 이곳에 배치되어 있다. 실제로 이 기지는 걸프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로 군 장비를 실어나를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기지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Camp Justice, 정의의 기지’다.

군사기지와 함께 산다는 것

군사기지 때문에 강제 추방당한 사람들은 디에고 가르시아 말고도 수두룩하다. 1980년대 니카라과에 혁명정부를 수립한 산디니스타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온두라스에 세워진 미군기지 때문에 농토를 몰수당했던 농민들은 미군의 주둔 연장을 위한 계약이 체결된 후 완전히 추방되었다. 지구의 꼭대기 그린란드에서도 군사기지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1951년 덴마크와 미국의 비밀 협약으로 그린란드 툴레 지역에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이누이트 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났다. 이후 이누이트 족들이 미군기지 땅 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툴레 공군기지 지역에 레이더 기지를 또 건설하려 하고 있다. 현재 덴마크 의회는 이를 허용한 상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모르는 곳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군사기지 건설로 쫓겨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기지와 함께 사는 삶은 어떨까.

“미군기지 안에 오키나와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일본 영토 총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74%가 몰려있으며, 주일미군 4만 명 가운데 2만 5천명 가량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디에고 가르시아가 중동과 남아시아를 견제할 전략적 요충지이며, 오키나와는 아시아와 태평양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중추 역할을 한다고 표현한다.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는 기노완 시 인구밀집지역 한가운데 위치해있다. 주택가 한복판을 통과하는 활주로의 비행 소음으로 주민들은 수년간 고통받아왔고, 기지 주변에는 성매매 업소, 술집과 같은 기지촌 산업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1995년에는 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 3명이 12살 초등학생을 납치해 강간, 살인을 저질러 오키나와 사람들의 큰 분노를 불러오기도 했다. 2004년에는 해병대 헬기가 오키나와 대학 한복판에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미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베트남전 당시 오키나와에서도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가 보관되고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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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텐마 미군기지 근처 주택가 한복판을 통과하는 전투기

군이 지역사회 인근에 배치되면서 낳는 수많은 문제는 곳곳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는 미군이 부대를 이탈해 인근 마을로 가서 총기를 난사했고, 17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보다 전에는 미군이 코란 등 종교 서적을 무더기로 불태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분노를 산 일도 있었다. 기지 근처에 산다는 것은 곧 언제든 이런 폭력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군사기지가 주요 공격대상이 되기 때문에 기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정세 변화에 따라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현 내 나고 시 헤코노 인근으로 이전한다는, 해안을 매립해 지상-해상 복합형 기지를 만든다는 결정에 오키나와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라는 한 주민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미군은 오키나와 기지를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 등에서 알차게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안보인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역사는 어디선가 그대로 반복되곤 한다. 세계 곳곳에서 군사기지 문제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운 것일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대추리에서 한국사회는 무엇을 배운 것일까. 지금 강정에서는 바로 그 ‘안보’라는 신성한 이름 아래 모든 것이 무시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과연 그 안보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안보인지, 군사기지를 확충하는 것으로 그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건지 근본부터 다시 물을 일이다. 또한 이 해군기지 건설로 실질적 이익을 얻는 시공업체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짚을 일이다.

토지 강제수용, 민주적인 의견수렴절차 무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환경영향평가, 절대보전지역 날치기 해제, 반대운동 측의 입을 막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권유린. 이제는 법을 지키는 일이 더 드문 지경이니 말하기도 입이 아프다. 강정마을 사람들의 평화적 생존권은 해군기지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고려되지 않았다. 전쟁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받지 않을 권리, 전쟁 위험에 처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권리보다 해군기지 건설 논리는 우선할 수 있는가? 군과 정부가 일방적으로 상정한 남방 해역의 ‘위협’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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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군사 전략상 중요한 대상이며 미군이 기지사용권을 얻게 될 것이라 우려해왔다. 해군기지 건설이 미-중 관계의 악화를 가져오고, 군사적 갈등을 유발할 것도 분명해 보인다. 역설적으로 군사기지 건설로 위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치 공권력이 상주하면서 강정의 평화가 깨졌듯 말이다. 어딘가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한, 어딘가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어딘가에서 기지가 유지되는 한 다른 곳에서도 기지는 확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안보와 평화에 위협이 되는 것은 오히려 이 군비경쟁이 아닐까.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디에고 가르시아에서 이라크로 향하는 전투기가 출발했듯, 베트남 전쟁에 오키나와 기지가 사용됐듯 강정에서 어딘가 전쟁터로 떠나는 군함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세계의 평화는 강정에서부터!”라는 구호가 지금 절실한 이유다.

평화는 저들이 이야기하듯, 단순히 군사기지 건설이나 군사력 증강을 통해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세계의 수많은 군사기지에서 배운다. 평화는 모든 생명이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단순한 가능성, 바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2012-04-12

수영 | 경계를 넘어
* 이 글은 격월간 <삶이 보이는 창> http://www.samchang.or.kr 8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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