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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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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남수단 파병,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꼭 군대가 가야 할까

또 하나의 파병

총 15개국 1,441명.* 전 세계에 파병된 한국군의 숫자다. 이 중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아이티, 소말리아, UAE에는 부대 단위의 군인이 파병되어 있다. 그리고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 27일, 국회에서 ‘국군부대의 국제연합 남수단 임무단 파견 동의안’이 159명의 의원 중 찬성 113명, 반대 27명, 기권 19명으로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수단 파병부대는 공병과 의무병력을 중심으로 총 300명 이내로 구성되어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파병될 예정이고, 수도 주바(Juba) 북쪽의 보르(Bor) 지역에 주둔하게 된다고 한다.

남수단의 공식적인 독립 선언을 앞둔 작년 7월 8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신생 독립국인 남수단의 평화 정착 및 재건 지원을 돕기 위해 UN 남수단 임무단(UNMISS)이라는 이름의 평화유지군을 창설한다는 결의안 1996호를 통과시켰다. UNMISS는 군인 7천 명, 경찰 9백 명, 민간인 등으로 구성되어 기존에 다르푸르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UN-아프리카연합 혼성 평화유지군(UNAMID) 등과 함께 현재까지 남수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방부는 한국군 파병부대가 바로 그 UNMISS의 일원으로 재건 지원, 의료 지원 등 인도적 지원 임무를 수행하게 될 예정이라 밝혔다.

분쟁으로 얼룩진 역사

수단은 토착 종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로 인한 갈등으로 오랜 내전을 겪었고,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 분쟁으로 20~3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10배는 많은 이들이 난민이 되어 이웃 국가 차드의 국경으로 이주했다.

식민지 시절 영국은 북부의 아랍계 무슬림과 기독교나 토착 종교를 믿는 남부의 흑인들 사이의 뿌리 깊은 문화․종교적 차이를 무시한 채, 북수단과 남수단을 통합해 수단의 국경선을 그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투자는 북부 지역에 편중되었다. 식민지 독립 전부터 시작된 북부와 남부의 내전은 1972년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부에 자치정부가 수립되어 한동안 분쟁이 가라앉는 듯 보였지만, 중앙 정부는 수단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겠다고 천명한 뒤 남부 수단에 이슬람법 샤리아를 도입하려고 하는 등 이슬람화 정책을 시작했다. 무슬림이 아니었던 남부 수단의 사람들은 이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 1983년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수단인민해방군(SLPA)이 조직되어 남부 수단의 독립을 원하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었는데, 에티오피아에 근거를 둔 인민해방군은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하르툼(수도)의 중앙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왔다. 아프리카 최대의 유혈 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2차 내전은 2005년 1월 포괄적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서 사실상 종결되었다. 협정의 내용은 6년간의 자치권을 가진 뒤 2011년 남수단의 국민투표로 분리 독립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르푸르 분쟁은 지속되고 있었다. 2003년 수단 서쪽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발한 분쟁은 아프리카계 흑인인 푸르족, 자가와족, 마살리트족 등으로 구성된 반군과 수단 정부군,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잔자위드’라는 이름의 북부 아랍계 이슬람 민병대 간의 분쟁으로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북부의 아랍계 유목민들이 가뭄과 사막화로 점점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남부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경작하고 있던 농경지를 침범하게 되어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의 친 이슬람 정책과 이슬람 민병대의 학살에 대한 묵인, 그리고 석유 자원까지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분쟁이 확산되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UN의 무기 통상금지 조치를 위반하고 계속해서 수단 정부에 무기를 수출했고, 그 무기들이 다르푸르 지역에서 민병대가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사용됐다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국제사회는 중국과 러시아, 벨라루스 등의 무기 수출을 강력히 제재하지는 않고, 평화유지군을 창설해 수단에 파병했다.

평화유지’군’이 필요한가

수단은 석유 자원이 풍부한 땅이다. 석유 매장량의 대부분은 최근 독립한 남수단에 있고, 이를 수송할 송유관은 북수단을 통과해 홍해와 연결된 항구인 포트수단에 다다른다. 그 때문에 독립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었고, 북수단과 남수단의 접경 지역에 있는 아비에이 유전 관리권 등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아 마찰을 빚고 있다. 한편 각국의 석유 회사들이 수단에 진출해 있는데 중국의 석유회사 SINOPEC과 CNPC 페트로차이나는 일찍이 수단에서 유전 개발과 송유관 건설 등에 대대적인 투자를 벌여왔고, 영국계 석유기업 BP 아모코 등으로 구성된 그레이터 나일 오일 컨소시엄 역시 유전 개발에 앞장서 왔다. 수십 년간의 분쟁으로 고통받아온 수단의 역사 뒤편에는 강대국과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이는 석유 확보와 무관하지 않았다. 남수단의 독립 이후 평화유지군의 창설과 각국의 파병 역시 석유를 둘러싼 이권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수십 년간의 내전으로 수단 사람들의 기본적인 일상은 파괴됐고, 의료 시설과 교육 시설 등도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국제 사회의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방식이 꼭 군대의 파병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남수단을 인도주의적으로 지원하고픈 마음이 있다면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닌 민간 부문의 무상 지원을 통해 이루어야 할 것이다. 최근 한 언론은 수단이 아프리카 5위의 원유 매장국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자원의 보고’ 남수단에 우리도 파병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남수단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군대를 보내는 행렬에 동참하는 행위는 남수단의 평화 유지와 재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 국방부, , 2012.10.15

2012년 11월 17일 수영
* 이 글은 격월간 <삶이 보이는 창> http://www.samchang.or.kr 8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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