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handout_copy

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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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3월이여, 오라

3월이여, 오라

인도의 반세계화 활동가이자 세계적인 작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의 유명한 책 에서 세계화와 전쟁, 제국주의의 진실을 폭로하면서 자신이 할 일은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픈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할 곳이 또 있다. 바로 티베트다. 티베트에서 3월은 조금 특별한 달이다. 1959년 3월 10일 라싸에서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난 이후, 매년 3월마다 티베트에서는 중국의 점령에 저항하는 투쟁이 계속되어 왔다. 1980년대 후반과 베이징올림픽이 있었던 2008년에는 티베트 각지에서 대규모 독립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티베트인들에게 3월이란 자유를 향한 열망이 끓어오르는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3월이 오고 있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다

티베트력 설날인 로싸(losar) 셋째 날이었던 지난 2월 13일, 동티베트 암도 지역 암촉(중국명 간쑤)에서 둑빠 카르라는 26세의 티베트인 남성이 티베트의 자유를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는 세 아이를 둔 아빠였고, 막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다. 같은 날 네팔 카트만두 티베트 불교의 성지 보드나트에서도 한 승려가 티베트의 자유를 외치며 분신했다. 2월 13일은 191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가 독립국임을 선언한 기념일이기도 하다. 며칠 뒤 17일에도 분신은 이어졌다. 역시 동티베트 암도 지역 라브랑에서 남라 체링이라는 49세의 남성이 도심 대로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더 이상 희생자 수를 헤아리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2009년 동티베트 암도 지역 아바(중국명 아바)에서 타페이라는 20세의 승려가 티베트의 자유와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뒤, 2011년부터 격화된 티베트인들의 분신 행렬은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티베트 본토와 인도, 네팔 등 망명 티베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국가를 합쳐서 총 분신자 수는 알려진 것만 108명에 달하고, 그들 중 대다수가 사망했다. 분신을 할 때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부을 뿐만 아니라 석유를 마시기 때문에 불길이 쉽게 꺼지지 않아 구조된다고 해도 심각한 부상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지금 티베트인들의 절박함은 저 숫자에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2월 17일 남라 체링의 분신 (출처: www.phayul.com)

티베트 학생들의 시위 (출처: www.phayul.com)

분신한 이들의 장례식은 또 다른 투쟁의 현장이 되고 있다. 장례식에 모인 분노한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경찰에 의해 금방 진압되기 일쑤이지만, 저항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체포와 감금의 위협을 무릅쓰고 금지된 티베트 깃발을 거는 퍼포먼스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인쇄물 검열로 제작하기 어려운 티베트에 대한 유인물을 직접 만들어 거리에 뿌리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중국 정부의 통신 차단과 삼엄한 검문을 넘어 티베트 전역으로 널리 퍼져 나간다.

현재 분신과 시위 등 저항이 집중되고 있는 곳은 동티베트 지역으로, 중국 정부가 임의로 지정한 티베트 자치구(TAR) 밖이다. 중국은 티베트를 점령한 뒤 1965년 우창 (U-TSANG: 중앙 티베트) 지역만을 ‘시짱 자치구’로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은 칭하이 성, 쓰촨 성, 간쑤 성, 윈난 성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동티베트는 원래 티베트 지역으로 인구 대부분이 예로부터 그 땅에 살아왔던 티베트인들이고, 티베트 문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티베트명은 암도(Amdo)와 캄(Kham)이다. 그 중 캄 지역의 아바라는 도시에서 특히 분신이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무려 27명의 티베트인이 이곳에서 분신했다. 2009년 처음 분신한 타페이 역시 아바의 키르티 사원 출신이었다. 캄 지역은 1950년 중국의 침공 이후 가장 마지막까지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며, 예로부터 저항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 언론에서 티베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올림픽 소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던 순간에도 아바를 비롯한 동티베트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티베트인들과 티베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몇 년째 계속되는 저항을 쟈스민 혁명에 빗대어 ‘짬빠 혁명(Tsampa Revolution)’으로 부르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승려들의 분신이 이어졌지만 점차 학생, 주부, 농부 등 승려가 아닌 이들의 분신이 더욱 늘어났다. 특히 10대와 20대의 분신이 거의 80%에 달한다. 작년 3월 3일, 동티베트 암도 지역 마추에서 분신한 19세의 학생 체링 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아바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티베트인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있다. 우리는 티베트를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 티베트의 자유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티베트인 대다수가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사실 달라이 라마의 얼굴을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세대다. 1950년 중국의 점령과 17개 조 협정의 체결, 1959년 달라이 라마와 수만 명 티베트인의 망명을 직접 보고 겪지 않은 세대인 것이다. 이들은 ‘점령된 땅 티베트’에서 태어나, 한족 이주정책과 칭짱철도 건설 등 중국의 지배 정책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성장했으며, 경제적·문화적으로 차별받아온 세대다. 그 새로운 세대가 자유를, 인권을, 우리의 정체성과 존엄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 티베트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환히 드러내 주는 조명탄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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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에 걸린 현수막 (출처: www.phayul.com)

중국 정부의 탄압

초기에는 분신을 ‘개인적인 이유로 인한 자살’이라고 왜곡하고 덮으려 하던 중국 정부는 곧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안 당국은 분신한 이들을 사망자든 부상자든 가리지 않고 즉시 끌고 간다. 이들의 신병을 돌려달라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다. 시위가 일어나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고, 최루가스를 살포하거나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는 등 강제 진압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분신이 집중되어온 아바의 키르티 사원에는 전기와 수도 공급을 끊고, 승려들을 사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며 모든 방문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 폭력적인 대응이 이어졌다. 현재 동티베트 전역에는 수많은 무장 병력이 배치되어 사실상 계엄 상태에 놓여 있지만, 그 와중에도 분신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티베트인이 분신 사태와 관련된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체포, 구속되고 있고 감옥 안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고문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티베트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실 언론 통제가 심해 티베트 내부의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기란 매우 어렵다. 중국 정부는 “안정과 통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언론과 여행객들의 티베트 출입을 제한해왔다. 북한조차도 티베트 라싸보다 평양에 외국 언론이 더 많이 상주한다고 자랑할 정도다. 티베트 자치구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2세대’ 시민증과 인터넷 카페에 신분을 등록할 서류를 구비해야만 한다. 티베트의 자유나 인권과 관련된 웹사이트는 모두 차단되어 있으며 인터넷 사용기록은 언제든 조회될 수 있다. 2010년 티베트에 갔을 때, 티베트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한국의 웹사이트는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으로 내부의 소식을 알린다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목숨을 걸고 분신 소식과 사진, 동영상 등을 외부로 타전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를 한 사람들은 국가 기밀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고, 애매모호한 재판 뒤에 바로 구속된다. 분신 소식을 외부에 알렸다는 혐의로 끌려가는 경우가 실제로 빈번하며, 이들이 어느 곳에 구금되어 있는지 당국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캄과 암도 지방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은 허가 없이는 라싸를 방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장황한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데, 성지 순례를 포함한 모든 목적의 방문이 마찬가지다. 이동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은 티베트에서 아직 사치스러운 가치일 뿐이다.

작년, 티베트 자치주(TAP) 깐호(중국명 간난)와 아바, 카드제, 티베트 자치구 내에 있는 나취 (중국명 나구) 등의 지역에는 중국 정부의 핵심 요원들과 ‘실무팀’들이 대거 배치되었다. 이들의 임무는 티베트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 조직적인 사상 교육을 실시하는 것, 티베트 내의 공산당 당원을 늘리는 것 등이었다. 1990년대부터 진행된 ‘애국심 재교육’은 티베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중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사상 교육이다. 최근 라싸 정부는 새로운 ‘애국심 재교육’ 캠페인과 ‘법률 교육’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러한 사상 교육은 전통적으로 저항의 중심지가 되어 왔던 사원을 겨냥하고 있다.

동티베트 전역에 배치된 무장경찰 (출처: www.phayul.com)

공산당의 18차 당 대회 기간 동안 11명의 티베트인이 연달아 분신했다. 이는 곧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를 향한 명확한 메시지였다. “시진핑은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이도 있었다. 후진타오 집권 10년 동안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 정부 간의 대화는 전혀 진전이 없었고, 대부분의 기간 동안 대화 자체가 중단되었다. 곧 국가주석이 될 시진핑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은 2011년 라싸를 방문했을 때, 티베트의 안정화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체적인 사회 안정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국가 안전과 사회 통합’이라는 단어가 티베트에 대한 탄압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중국의 국내 안전보장을 위한 예산은 전년도보다 11.5% 증가한 7,018억 위안 (한화 약 121조 원)이었다. 이는 국방 예산으로 책정된 6,703억 위안(한화 약 116조 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티베트인, 동투르키스탄인, 몽골인 등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우리는 행복하게 하나가 되어 살고 있어요”하며 웃음 짓는 CCTV의 광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작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일어난 일 중 끔찍한 것을 또 하나 꼽으라면 범죄자 처리 과정에 대한 법을 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73조에 대한 개정으로 정치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불법적인 구금이 합법화되었다. 개정된 법안은 ‘국가 안전을 위협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 최장 6개월까지 감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테러나 뇌물 수수 등의 범죄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의 투쟁은 이 중 ‘테러’로 분류된다.

지난 1월 30일, 라브랑(중국명 샤허) 지방법원은 6명의 티베트인에게 최장 12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들의 혐의는 공안이 끌고 가려던 분신자를 구조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아바 지방법원은 롭상 쿤촉에게 분신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사형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같은 혐의로 롭상 체링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곳곳에서 무거운 징역형 선고가 이어지고 있다. 분신을 도왔거나, 분신자를 구하려 했거나,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구속되고 있다. 반면 분신을 모의하거나 선동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포상금이 지급된다.

몇 년 사이에 엄청난 숫자가 체포되었고, ‘국가 기밀 누설’과 ‘국가 안전 위협’이라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실종된 이들도 많다. 2012년 다람살라에 위치한 인권단체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티베트 위원회(Tibetan Centre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는 티베트에 있는 양심수가 알려진 것만 총 269명이라고 밝혔다. 한편 망명자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중국과 인도, 네팔 국경의 경비가 강화된 탓이다. 2011년에는 600명이 망명에 성공한 반면, 2012년에는 그 숫자가 374명으로 줄었다. 이렇듯 중국 정부의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티베트 내부의 상황은 점점 더 엄혹해지고 있다.

무기력한 망명정부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인 롭상 상게는 지속적으로 국제 사회의 관심과 개입을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제 사회에서 티베트는 강대국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가져다 쓰는 이슈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망명 2세대, 3세대가 태어나면서 망명 사회와 본토에 있는 티베트인들 사이의 괴리감도 상당해졌다. 망명한 티베트인들은 ‘촛불을 들고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 거리를 왔다갔다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력한 현실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티베트에는 크게 2가지 노선이 존재한다. 독립하지는 않되 고도의 자치를 요구하는 중도노선과 완전한 독립 노선이다. 달라이 라마와 망명정부는 오래전부터 중도노선을 표방하며 중국 정부와 대화를 요구해왔지만 그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독립 노선을 지지하는 티베트인들도 상당수이고,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망명정부는 이러한 요구들을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2년 전 첫 선거를 치르고, 총리를 선출한 망명사회에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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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중 발견된 티베트어 유인물 “종교와 언어, 문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자.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집회할 권리를 원한다”

아픈 눈을 뜨고 티베트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티베트에 대해 흔히 사용되는 수식어들이 있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 영적인 민족,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티베트인. 이제 이런 미사여구 따위는 버리는 것이 어떨까. 그런 환상이 티베트를 지지해야 할 필요조건은 아니니까 말이다. 티베트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삶이 있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픈 눈을 뜨고 티베트의 진짜 현실을 바라볼 때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티베트와의 연대는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폭력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계속되는 삶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되찾기 위해 절박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티베트력 새해인 로싸는 매년 양력으로 2월 즈음이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 망명정부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로싸를 기념하지 말자고 매년 발표해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고, 다시 3월이 오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의 평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2013년 2월 25일
수영ㅣ 경계를 넘어, 랑쩬

* 이 글은 계간 <우리교육> www.uriedu.co.kr 2013년 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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