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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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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이집트 시민들이 30년간 드리워져온 비상계엄의 장막을 찢고 막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지난 1월 26일, 낯선 이방인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이집트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서울에 있는 자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은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불쑥 메일을 보낸 거였습니다. 자기네는 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일 뿐이라고, 하지만 맨 몸으로 경찰의 총과 최루탄, 몽둥이에 맞선 고향의 동포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에 맞닥뜨려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만히 발만 구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그래서 설사 시위를 벌이다 잡혀가는 일이 있더라도 자기는 혼자서라도 대사관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며칠 뒤 이태원에 있는 이집트 대사관 앞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국의 활동가들과 이집트 사람들, 그리고 기자들이었습니다. 특히 평일 낮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임에 분명한 이집트 사람들은 이백 명 가량 되는 시위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샤압! 유리드! 에스가압 엘네잠!(민중들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

그들은 시위 도중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과 이집트 국기를 흔들며 쉬지 않고 구호를 외쳐댔습니다. 그 중 몇몇은 당장에라도 길 건너편에 있는 대사관 건물로 뛰어들 듯한 기세여서 오히려 한국 활동가들이 만류해야 할 정도였고, 애초 예정됐던 집회 순서는 진작에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때 그들 중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지요. “지난 30년간 무바라크와 그 정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이집트인들을 죽이거나 억눌러왔습니다. 모두가 어떻게든 살아남는데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죠. 되돌아보면 마치 꿈같은 세월이었습니다. 불과 이주 전만 하더라도 누가 이집트에서 지금과 같은 민중항쟁이 일어날 수 있겠냐고 물으면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의 이집트와 그 국민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 손으로 자유를 쟁취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합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항쟁이 시작된 지 열 여드레 만에 무바라크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대를 이어 천년만년 갈 것만 같던 독재의 철옹성이 카이로의 해방광장과 알렉산드리아의 거리, 수에즈의 항구, 마할라의 공장을 가득 메운 민중들의 함성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2월 12일,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고 껑충껑충 뛰어 다니며 서로의 볼에 키스를 하는 이집트 시민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며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고생하셨고, 참으로 장합니다. 당신들 손으로 싸워서 얻은 자유, 마음껏 자랑스러워하고 누리고 또 소중히 간직하세요. 다시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말이에요 라구요.

물론 모두가 인정하듯 항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 이제 큰 산 하나를 넘었을 뿐입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그 정권과 장군들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항쟁 초기에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무바라크가 서둘러 부통령으로 임명해 정국 운영을 위임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존재는 이집트가 진정 자유롭고 공정하고 민주 사회라는 신작 영화를 내걸 수 있을지, 아니면 주인공만 바뀐 ‘무바라크 속편’을 재탕 삼탕 우려먹게 될 지를 결정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듯합니다. 1993년부터 이집트의 정보부(General Intelligence Service)의 총 책임자였던 술레이만은 반체제 인사들과 언론인, 노동자, 학생들을 시도 때도 없이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제 손에 더러운 피를 묻혀 가면서까지 무바라크에 충성을 다 바쳤던 무바라크의 오른팔이었습니다. 또한 1990년대 중반부터, 그러니까 조지 W. 부시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있기 훨씬 전부터 클린턴 정부로부터 테러 용의자들을 넘겨받아 고문을 가하고 불법구금함으로써 조국 이집트에 ‘미국의 고문수용소’라는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안긴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미국 CIA에 의해 억울하게 테러리스트로 몰려 이집트로 넘겨진 이집트 태생의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자 맘두 하비브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잡힌 알 카에다 요원 이븐 알 셰이크 알-리비 같은 사람들은 술레이만이 ‘친히’ 고문을 가한 것으로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 중 알-리비는 결국 고문에 못 이겨 알카에다와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의 관계를 거짓 실토함으로써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침공하는데 결정적인 빌미가 되기도 했었죠. 이런 사람이 민주화로 가는 협상 과정에서 계속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 자체가 한 편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해온 군부는 이번 항쟁 기간 동안에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음으로써 국내외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워낙 거대한 민심의 흐름이 두려워서, 그리고 상부에서 발포 명령을 내려도 차마 가족과 친구들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 장교들과 사병들의 반발이 두려워서일 뿐입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집트 군부에게 해마다 15억 달러가 넘는 군사적 지원을 해온 든든한 뒷배인 미국 정부가 마지막 순간까지 갈피를 못 잡고 주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밀던 친미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면 항상 예정된 수순을 따라 왔습니다. 일단 최대한 끝까지 독재자를 밀어주기,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180도 태도 바꾸기, 그 다음 화해와 통합이란 미명하에 과거 인물들을 새로운 체제의 중심부에 집어넣기,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변화를 원점으로 돌리기가 바로 그 수순입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때가 그랬고, 아이티의 뒤발리에,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등등 한결 같았습니다. 이번에 이집트도 마찬가지 수순을 따르게 하는 것, 그것이 미국의 뒤늦은 전략이고, 그 핵심 축이 바로 군부의 노회한 장군들입니다.

아직 넘어야할 높은 산이 첩첩이 놓여 있다는 건, 항쟁을 중심에서 이끈 으로 대표되는 젊은이들과 이집트 시민들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의 환호성 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 겁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해보입니다. 파키스탄 출신의 진보 지식인인 타리크 알 리가 이집트 연대 시위에서 말했듯, “민중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게 되면, 세상 그 어떤 권력도 민중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2011년 2월 16일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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