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8501_21990_5454

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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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집트 국민들은 당최 납득이 안 갈 한국의 단일화 줄다리기

“여론조사 문항 싸고 막판 진통” “단순 지지도냐, 박과 대결 경쟁력이냐…피 말리는 끝내기” “오늘밤 100분에 사활 건다.” 지난 수요일 하루 동안 모 일간지 1면과 정치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들이다. 대통령 선거일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야권후보 단일화 여부다. 문재인, 안철수 양측이 단일화 방식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지지자들의 속은 마냥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협상이 삐걱댄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혹시 이러다가 둘 다 따로 후보로 나서는 거 아냐?’하는 불안감에 시시때때로 뉴스를 검색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급기야 단일화를 촉구하는 촛불시위가 열리고,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어느 50대 남성이 단일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유서로 남기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어쨌든 26일 후보등록 마감 전까지는 단일화를 마무리 짓겠다고 두 후보가 공언한 터이니, 아마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어떤 식으로든 그 결론이 내려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결과와 상관없이, 지난 몇 달간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단일화 ‘희망고문’에 가슴 졸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5년간 시달린 것도 지겨워죽겠는데 또 5년을 더 견뎌야할 수 있다는 불길한 상상에 몸서리치는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에 딴죽을 걸자는 게 아니다. 다만, 단 한 번의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무조건 승자가 되는 단순다수제 투표방식이 얼마나 불합리한 지를 이 시점에서 다시 되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매번 이렇게 피를 말리면서도 왜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생각은 안하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그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부터는 잠시 이집트로 눈을 돌려볼까 한다.

독재로의 회귀냐 민주주의의 첫발이냐를 판가름 낸 한판 승부, 이집트 대선

지난 5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이집트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집트 역사상 두 번째로 복수의 후보가 출마한 당시 선거는 비단 이집트뿐만 아니라 아랍권, 아니 국제정치질서 전체의 향방을 결정할 만큼 아주 중요한 정치 이벤트로서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잡아끌었다. 그것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언제까지나 ‘대통령’일 것만 같던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가 불과 18일간의 전국적인 민중항쟁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린 뒤에 처음으로 치러진 대통령선거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투표용지에 최종적으로 이름을 올린 후보는 모두 12명. 그 중 당선권에 근접한 후보로는 이슬람주의를 대표하는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 후보 모하메드 무르시와 무소속의 압델 모나임 아불 포토우, 좌파 민족주의 존엄당의 함딘 사바히, 그리고 무바라크 정권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크와 역시 외무장관을 거쳐서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한 암르 무사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아흐메드 샤피크나 암르 무사의 당선은 무려 800명이 넘는 고귀한 목숨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침으로써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던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최악의 경우의 수였다. 둘 다 과거 독재정권의 폭압과 인권탄압의 책임의 한 축을 짊어진 독재정권의 잔당들, 즉 ‘펠룰(felool)’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간에 그렇게 생겨난 정권은 사실상 ‘무바라크 2.0’이 될 건 뻔 한 노릇, 자칫하면 죽 쒀서 개 줘야할 상황이 연출될 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반면 그 반대편에 선 후보들은 지지자들이 확연히 엇갈렸다. 먼저 모하메드 무르시를 내세운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 정권 하에서 살인과 투옥, 고문, 추방 등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도시의 중산층과 지식인, 시골 빈민들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불법단체로 지정돼 모든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던 2005년 총선에서도 전체 하원의석의 20%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게 그 대표적 증거였다. 그러나 민중항쟁을 처음 조직하고 이끌었던 청년층과 좌파, 자유주의자들은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을 탐탁찮게 여겼다. 애초 무슬림 형제단이 민중항쟁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한 이유였고, 그래서 대통령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약속을 뒤집은 것도 의혹의 눈길을 사기에 충분했다. 결국 피는 국민들이 흘리고, 민주화의 과실은 무슬림 형제단이 따가려는 게 아니냐는 거였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들이 압델 모나임 아불 포토우와 함딘 사바히였다. 아불 포토우는 원래는 무슬림형제단 출신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수차례 투옥을 거듭하면서도 정치민주화와 노동자들을 위해 꾸준히 헌신해온 이력으로 인해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이집트가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민족주의 성향의 유권자들은 함딘 사바히에게로 마음이 쏠렸다. 언론들은 그런 그를 잠재력을 가진 다크호스로 지목했다.

그 날, 단일화에 노심초사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듯 결과적으로 ‘독재 잔당 후보 2명 대 반독재세력 3명’의 대결구도가 형성된 셈인데, 시대상황이나 그 구도로 봤을 때 이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한국의 대선과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독재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나머지 후보들이 단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최다득표를 한 상위 두 후보를 놓고 다시 선거를 치르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슬림형제단의 무르시 후보가 24.8%, 샤피크 전 총리가 23.7%로 1,2위를 차지해 결선에 진출했고, 최종적으로 무르시가 결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되었다. 참고로, 함딘 사바히는 20.7%, 아불 포토우는 17.5%를 득표했다.

여기에서 보듯이, 1차 투표에서 무르시와 샤피크의 표차는 불과 1.1%밖에 나지 않았기에 자칫하면 정말 독재세력이 다시 집권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한국처럼 단순다수제 선거였다면 말이다. 실제로 1987년 선거에서 끝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금까지도 민주화의 시계를 늦춘 역사의 죄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그럴 염려가 없었다. 1차 투표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망설임 없이 표를 던졌다. 그리고 누구누구가 되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선택은 결선투표에나 가서 하면 될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극우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 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사회당 지지자들이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자크 시라크에게 표를 주려고 투표장에 달려갔던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는 지금도 가장 유명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선을 선택하는 건 결선투표에서나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큰 틀에서의 정책이나 정치 철학, 심지어 인물 됨됨이까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단일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아마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똑같은 정책을 가지고도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누구나 후보로 출마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볼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의 단일화를 바란다. 30년째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그 분이 대통령이 되는 건 정말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단일화 여부를 놓고 손에 땀을 쥐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을 더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진보개혁의 한 축을 담당해야할 진보정당들이 매번 당연한 듯 양보를 강요당하는 상황도 싫고 말이다.

듣자하니 진보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 7월 말에 제출한 결선투표제 도입 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한다. 다른 정당은 몰라도 새누리 당만큼은 야권 단일화가 그렇게 꼴 보기 싫으면 야합이니 정치쇼니 하고 맹공을 퍼부을 시간에 결선투표제 도입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이래저래 “납뜩이 안 된다, 납뜩이.”

2012년 11월 26일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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