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no image

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0

[칼럼] 편견과 왜곡으로 포장된 아이티의 진실

피부색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이 구분된다고 생각 하는지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할 겁니다. 그렇죠.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이 서로 다른 것은 개인들의 차이이지 피부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같은 밥을 먹고,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은 서로 많이 다릅니다. 때로는 다른 가족이 보이는 태도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연하리만큼 여겨지는 이러한 생각이 때때로 극적인 상황 앞에서 정반대로 작용하게 됩니다. 지난 1월 12일, 라틴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난 이후 벌어진 상황 앞에서처럼 말이죠.

지진이 일어난 후 초기 며칠 동안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 어마어마한 사망자 숫자, 그리고 부족한 물과 식량,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아이티 뉴스의 전부였습니다. 뉴스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론과 유엔,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브라질 등 국가들은 아이티에서 약탈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점 앞에서 칼과 돌을 들고 화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청년, 약탈을 시도하다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해있는 외국군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서 아이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집니다. 지진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저 사람들은 왜 서로 싸우고 훔치는 것 밖에 못할까? 저런 가난한 나라의 정부는 역시나 무능력해. 빨리 누군가 아이티로 가서 저 상황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더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런데 그들이 이야기하고 보여준 것처럼 아이티에서는 정말로 비이성적인 무법천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실제로 아이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 없는 우리들로서는 현장에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 아이티의 소식을 전한 언론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지진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파견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외국인 기자가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고,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데 일주일 동안 한국을 방문해 한국 사회에 대한 기사를 쓴다고 생각해봅시다. 그의 기사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보고 겪은 한정된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국 대통령이 시장에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고 상인들이 웃음으로 화답하는 장면을 취재했다면, 그는 아마도 한국 대통령이 참 소탈하고 친근한 사람이라고 기사를 쓰겠지요.

아이티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오랫동안 아이티 사회를 관심 있게 지켜봐왔고,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은 대다수 언론의 보도가 크게 부풀려지고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미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에는 아이티 남성이 상점에서 물건을 꺼내 상점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사진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사진의 제목은 “상점을 약탈하는 아이티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에서 오래 활동해온 한 활동가는 “실제로 이 사진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구호품이 전해지지 않자 물과 식량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지진으로 파손된 상점에 쌓여있는 물품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영국의 언론인은 식재료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시장이 다시 열리는 등 초기의 혼란한 상황이 진정되고 있는데 시장 가까운 곳에 대규모 난민촌이 형성되어있지만 상인들은 약탈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며,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놀랄만한 인내력을 보여줬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티 사람들이 언론에서 비춰진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들이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인내하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해명할 틈도 없이, 그리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미 국제사회는 아이티를 향해 파병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이티의 폭력과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군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앞세우고 말입니다. 미국은 1만2천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아이티 공항과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지진피해지역을 구역별로 나누어 통제하고 있으며, 캐나다와 프랑스, 브라질, 일본 등도 각각 수백 명 규모의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2004년부터 아이티에 9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던 유엔이 유엔안정화지원단을 3천5백 명 더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한국 정부도 2백50명 규모의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보니 주류 언론들이 무엇을 위해 아이티의 치안 상황이 엉망이라고 부풀리고 왜곡했는지 자연스레 의심이 드네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람은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등 그 사람을 규정짓는 외부의 조건과 상관없이 밥이 부족하면 배가 고프고, 상처가 나면 아프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슬픔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자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아이티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티베트 등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힘겨운 상황에 놓여있지만, 아이티 사람들은 외세가 개입한 과거 수십 년간의 독재와 30차례가 넘는 쿠데타에 맞서 투쟁해왔고 끝내 민주적으로 자신들의 정권을 세운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아이티 사람들에게 현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과 의약품 등의 구호물품과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줄 진심어린 연대가 있다면 그들 스스로 얼마든지 지금의 고난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아이티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바로 아이티 민중들의 그러한 의지와 능력을 믿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합니다.

2010년 2월 22일 수진

Tags:


About the Author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Back to Top ↑
  • stopADEX 2013 스케치 영상

  • 경계를넘어 메일링리스트


    경계를넘어의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경계를넘어 on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