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111

Published on 4월 15th, 2013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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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도대체 그 많은 구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티의 재건은 결국 아이티 사람들의 몫이 돼야

열두 살 소년 지방송의 집은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 아이가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 사방을 방수포로 덮은 천막이다. 밤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아이는 그래서 침대 위에서 잠을 자는 게 소원이다. 근처에 사는 예순 세 살 탈리앙의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들어가지 마라는 표시이다. 그러나 달리 갈 곳이 없는 노인은 항상 불안에 떨면서도 그 집에 몸을 누인다.

반면, 쥐스트는 그 둘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예전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에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건물이라고 해봐야 벽은 비닐로 대충 덮여 있고, 방 하나에 열두 식구가 같이 끼어 살아야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 윌리엄은 얼마 전 새 집에 입주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기독교 자선단체들이 장애인들을 위해 새로이 집을 지어준 덕분이다.

이렇듯 각각 사는 형태는 달라도 이들 모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연이 가져다 준 대재앙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여전히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삶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언덕의 이름을 따서 ‘골고다’라고 부른다.(뉴욕타임스, 2012년 8월 15일자 기사에서 일부 발췌 및 재구성)

지난 1월 12일은 중남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만 무려 25만 명에다 3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니(국제구호 단체인 ‘옥스팸 인터내셔널’의 추산), 진도 7.0의 세기로 불과 35초 동안 땅이 몸부림을 친 결과치고는 너무나 참혹하고 끔찍한 비극이었다.

되짚어보기 – 아이티 지진은 왜 그토록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을까

그런데 지진의 강도에 비해 훨씬 더 막대한 인명피해를 낳은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13만 4천 명의 인구가 밀집한 항구도시 레오간과 인구 80만 명의 수도 포르 투 프랭스로부터 지진의 진앙지가 불과 십 여 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았던 게 이유였지만, 그것 역시도 어떤 계기로 인한 결과일 뿐 따지고 보면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는지를 우리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외부에 의해 강요된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로인한 농업의 붕괴라는 원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티는 예나 지금이나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주식인 쌀과 식량만큼은 거의 자급자족하는 나라였다. 그러던 1981년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가 섬을 강타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과 국제기구는 아이티 정부에게 토종돼지를 살처분하는 대신 미국산 돼지를 들여오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미국산 돼지는 비싼 사료만 엄청 축내다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죄다 죽어버렸다. 그 바람에 아이티의 돼지 농가들은 모두 6억 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고 망해버렸다. 그리고 돼지를 키우던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무작정 떠났다.

또한 198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이티에 돈을 빌려주면서 쌀시장을 개방하게 했다. 그 때부터 아이티에는 값싼 미국산 쌀이 조금씩 수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미국 정부는 1995년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프로그램을 통해 아예 아이티의 수입쌀 관세율을 35%에서 3%로 대폭 낮춰버렸다. 이제 아이티 시장에서는 ‘마이애미 쌀’이라 불리는 미국산 쌀이 75%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쌀농사를 지어도 내다 팔 곳이 없게 된 농민들이 또다시 대거 도시로 떠났다. 그들은 대도시 외곽에 허름한 집을 짓고 날품을 팔거나 행상을 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도시 빈민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 그들의 집에 건축물 안전기준 따위가 적용됐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게 그들은 진도 7.0의 강진이 들이닥치자 성냥갑처럼 와르르 무너진 벽돌더미에 고스란히 깔려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을 들여다보기 – ① 그들은 왜 아직도 천막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어쨌든 이제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슬픔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그 날의 악몽을 뒤로 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만한 기운을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을까? 불행히도 아직은 아닌 듯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3년이 지나도록 집 없는 난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국제이주기구(IOM)의 통계에 따르면, 대지진 때문에 살 집을 잃어버렸던 난민 약 150만 명 가운데 아직까지 36만 명이 496개의 크고 작은 천막촌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사유지나 공공부지에 있다는 이유로 천막촌이 강제 철거돼 이미 쫓겨난 150여 곳의 천막촌 거주자 6만 여 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누더기가 다 된 천막에서 1,200명 당 샤워꼭지 하나에 77명 당 변기 하나가 있는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언제 무너질지 몰라도 내 집에서 살다 죽겠다며 ‘빨간 딱지’(수리가 불가능하다는 판정)가 붙은 집으로 돌아간 5만여 가구와 ‘노란 딱지’(위험하지만 제한적 피해를 입었다는 판정) 거주자 12만 가구도 제외되어 있다.

대부분 산 아래나 강가에 위치해 있어 산사태나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그들 천막촌 거주자들은 언제 제대로 된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이 쓰레기가 가득한 계곡에 그냥 대소변을 보면서 하루 한 끼 건네지는 구호식량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년 동안이나 말이다.

오늘을 들여다보기 – ② 공수표만 잔뜩 날린 국제사회

그렇다면 여기서 당연히 제기되는 의문 하나. 우리 모두는 아이티 대지진 소식이 전해진 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왔던 동정과 연민의 목소리, 그리고 따스한 도움의 손길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지진이 일어난 지 11주 뒤인 2010년 3월 31일에 열린 공여국 정부 간 회의 ‘아이티의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에서 지원을 약속한 재건복구 금액만 해도 53억 달러(한화로 약 6조원)에 달했고, 각국의 시민들이 민간구호단체들에게 모금해준 금액도 추가로 30억 달러(한화 약 3조 3천억 원)나 됐다. 그러나 이 돈의 절반만 투입해도 천만 원짜리 집을 5만 채는 지었어야 정상이지만, 지금까지 실제 지어진 집은 5,700채에 불과했다(뉴욕타임스, 2012년 8월 15일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누군가 돈을 왕창 떼어먹기라도 한 걸까. 물론 드물게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일단 첫 번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각국 정부가 애초 약속한 돈을 다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약속된 지원금 가운데 2012년 9월까지 실제 전달된 돈은 절반이 조금 넘는 52.3퍼센트에 불과했고, 나머지 돈을 언제 줄지는 기약조차 없다(더 네이션, 2012년 11월 19일자). 국제사회가 생색은 생색대로 다 내놓고, 세상의 관심이 희미해지자 슬그머니 입을 닦아버린 것이다.

오늘을 들여다보기 – ③ 국제기구와 엔지오들의 묻지마 재건사업과 돈 낭비

그 다음으로는, 지진 구호 당시에도 그랬지만 재건 과정에서도 국제기구와 민간 원조단체들이아이티 주민들의 목소리와 요구보다는 자기네 기부자들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가시적인 사업에 더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된다. 그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미주개발은행이 조하지(Zoranje)라는 곳에 3천만 달러를 들여 4백 채의 시범주택을 조성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부서진 16개 동네를 수리해 천막촌 6곳에 거주하는 난민들에게 1년간 5백 달러의 월세를 보조해 이주하게 한다는 아이티 정부의 이른바 ‘16/6’ 프로그램과 연계해 진행됐지만, 반년이 다 되도록 공무원 25가구만 입주를 했을 뿐 텅 빈 채로 남겨져 있다. 난민들이 먹고 살려면 일자리가 있는 도시에 거주지가 마련돼야 하는데, 완전히 허허벌판에다가 집을 지어놨으니 아무도 들어가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난민들은 해외 원조단체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도움 없이 영구적으로 살 수 있는 주택을 절실히 원했다. 그러나 민간 원조단체들은 임시로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가건물(‘T-shelters’)를 마련하는 데 돈을 쏟아 부어왔다. 문제는 이런 가건물들은 대부분 합판이나 철판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불과해, 짧으면 2년, 길어야 3년이면 완전히 못 쓰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원룸 하나에 적게는 7명에서 많게는 12명을 한꺼번에 거주하게 하는 바람에 낮에는 너무 더워서 집에 있을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CARE, 해비타트, 적십자, 월드비전 같은 수 십 여개의 민간단체들은 레오간 한 도시에만 28,560채의 가건물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데는 영구주택보다는 가건물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예수회가 후원하는 CERFAS라는 단체의 보고서에서는 현재까지 전체 재건지원자금 가운데 주택에 배정된 4억 6천만 달러의 79%를 이런 2,3년 짜리 임시 가건물 109,000여 채를 짓는 데 쏟아 부었다고 한다.

오늘을 들여다보기 – ④ 그들이 떠난 뒤

국제기구와 원조단체가 직접 인력을 파견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드는 경상비가 실제 지원금액을 능가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을뿐더러 그들이 떠난 뒤에는 모든 게 중단돼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아이티에는 인도 다음으로 많은 국제 엔지오(NGO)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흔히 아이티를 ‘엔지오 공화국’이라 부르곤 한다. 아이티에서 활동하는 엔지오가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제지원자금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상당수 단체들이 아이티에서 철수하고 있다. 그래서 원래 국제구호요원들이 현지 상황을 공유하는데 활용하던 ‘Aid Listserv’라는 게시판에는 요즘 개인물품이나 임대했던 빈방을 내놓는 글들이 주로 올라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24시간 경비원 3명이 딸린 침실 4개짜리 아파트가 월세 1,850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55퍼센트가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나라에서 말이다. 그리고 엔지오들이 떠난 천막촌에는 모든 물 공급이 중단되고, 이동식 화장실은 대소변이 수북이 쌓인 채로 방치되기 일쑤이다(더 네이션, 2012년 10월 31일자).

행여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소중한 시간과 노력, 때로는 위험까지도 마다않고 한달음에 달려간 사람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남을 돕는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배려와 고민을 필요로 한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아이티 정부는 부패했고 무능력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티의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가 역량이 취약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지만, 현상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목소리와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그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아이티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결국 그 땅은 그들이 나고 자라고 또 살아가야할 땅, 그렇다면 아이티의 재건도 결국 그들의 몫이 되게 해야 한다.

2013년 1월 23일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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