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2013년 12월 4일 외교부 앞 기자회견 퍼포먼스

Published on 2월 3rd, 2014 | by 경계를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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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한국산 최루탄, 바레인을 울리다

거리에 운집한 수만 명의 사람, 만장에 쓰인 열사들의 이름, 새까맣게 중무장한 진압경찰, 시위대 너머로 보이는 하얀 연기. 흑백사진 속에 남아 있는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시위의 모습이다. 그곳에는 늘 최루탄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매캐한 냄새와 따가움에 눈도 뜨지 못하고 정신을 잃게 된다는 증언과 눈 밑에 치약을 바르고 물안경을 쓰고 시위에 나가곤 했다는 무용담만 남았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랄 같은 최루탄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건 아마도 한-미 FTA반대 집회였는데, 그게 2005년이었으니 나는 한국산 최루탄을 맞아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다. 그래서 난 그냥 그게 없어진 줄 알았다. 2013년 6월, 터키에서 시위 진압에 경찰이 사용한 최루탄에 ‘Made in Korea’라는 문구가 버젓이 박혀있는 사진 한 장을 인터넷에서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소위 ‘무(無) 최루탄 원칙’을 발표한 이후 경찰은 대표적인 시위 진압 장비였던 최루탄과 최루액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인체에 유해하고 위험하다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1997년 한 해 동안 경찰이 각종 시위 현장에서 사용한 최루탄이 무려 11억 발이라고 하는데, 그럼 그 많던 최루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군대에서는 여전히 최루탄을 보유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수요는 있었겠지만 한국에서는 예전처럼 최루탄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한국산 최루탄은 바레인, 터키, 말라위, 방글라데시,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전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곳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터키에서 발견된 한국산 최루탄

터키에서 발견된 한국산 최루탄

2013년 10월 16일, 바레인 정부가 최루탄 160만 발을 추가로 수입하려 한다는 문서가 유출된 뒤 ‘바레인 워치(Bahrain Watch)’는 최루탄 수출을 막기 위한 ‘Stop the Shipment’ 캠페인(stoptheshipment.org)을 시작했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바레인에서도 독재 왕정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요구하기 위한 시위가 일어났다. 바레인 보안군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는데, 진압 과정에서 특히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해왔다. 인권단체 ‘Physicians for Human Rights’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금까지 최루탄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가 최소 39명에서 최대 2백여 명에 이르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엄마 배 속에 있던 태아부터 어린이, 88세 노인까지 광범위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그 원인은 직격탄을 맞거나 최루가스에 노출된 것이었다. 현지에서 찍힌 영상을 보면 보안군은 사람들을 향해 최루탄을 직접 발사하는가 하면 주택 안으로 최루탄을 쏘기도 한다. 절망적인 것은 바레인에서 그렇게 사용되고 있는 최루탄을 가장 많이 공급하고 있는 곳이 한국 업체라는 사실이다. 경남 김해에 위치한 (주)대광화공은 지난 2년간 바레인에 150만 발의 최루탄을 수출했고, 한화로 125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바레인 등지로 수출되는 최루탄은 최루탄 중에서도 CS탄으로 군용전략물자로 분류된다. CS탄은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CS최루액은 2009년 쌍용자동차 진압 때 마지막으로 사용된 뒤 2011년 모두 폐기되었다. 국내법에 따르면 최루탄 등 화약류를 생산, 수출할 때는 기본적으로 각 지방 경찰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군용전략물자일 경우 추가로 방위사업청의 수출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 업체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2년 동안 바레인 인구 (140만 명)보다 많은 양의 최루탄을 수출해왔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바레인으로 수출되는 최루탄이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무기 수출을 승인해왔다. 사실상 인권침해 행위를 지원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경찰청은 바레인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수출을 승인해주었으며, 최종 수출허가 관청인 방사청은 지난 2년간 대광화공이 바레인으로 최루탄을 수출해온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최근 밝혀졌다. 바레인으로 수출된 최루탄은 심지어 방사청의 허가도 없이 불법으로 수출된 것이었다.

바레인으로의 최루탄 수출을 승인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 위해 경찰청 총포화약계에 전화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국내법으로는 외국 사람들의 인권까지 고려하고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한국 사람에게 위험한 무기인 최루탄은 당연히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위험한 무기인데, 최루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국경에서 멈춰버렸다. 정부는 국내에서 최루탄의 사용을 금지했지만 생산과 수출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두었다. 그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무기를 수출할 수 있다면 그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와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상관없다는 태도가 깔려 있다.

2013년 12월 4일 외교부 앞 기자회견 퍼포먼스

바레인 워치가 타전하는 긴급한 소식들을 듣고 한국 단체들도 추가적인 최루탄 수출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방사청 앞 기자회견, 방사청과 외교부에 항의전화나 항의트윗을 하는 액션, 외교부 앞 기자회견 등을 진행하고 추가 수출승인이 있는지 방사청에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모니터했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바레인뿐만 아니라 심각한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데 쓰이거나 쓰일 가능성이 높은 어떤 국가로도 최루탄 수출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으로 온라인 액션에 동참했다. 바레인 워치 등 외국 단체들도 언론에 이러한 내용을 알리며 적극적으로 온라인 액션을 조직하고,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의거하여 OECD 한국 연락사무소에 대광화공에 대한 이의제기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UN 특별보고관들에게도 탄원을 보내는 등 다양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7일, 기쁘고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방사청이 최루탄 생산업체에 사실상 수출 중단을 통보했다는 보도가 파이낸셜타임스를 시작으로 속속 올라온 것이다. 정부에 우리가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했는데 그게 그대로 된 것이 거의 처음이라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런저런 기사를 계속 찾아보았는데 사실이었다. 작년 11월 바레인 수출 가능 여부에 대해 문의한 두 업체(아마도 대광화공과 휴먼스화공)에 방사청이 수출 유보를 통보한 것이다. 방사청 대변인은 바레인 정세가 불안하고 최루탄으로 사람이 사망하면서 단체들의 항의를 받아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일명 ‘최루탄 수출 방해작전’ 단기적으로는 성공! 너무 기뻐서 앞으로도 영원히 수출하지 말라고 추임새를 넣고 싶은 기분이었다. 더불어 우리가 좀 더 일찍 최루탄 수출 문제에 대해 알았다면 적어도 몇 명의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욱신욱신하기도 했다. 당장 바레인 수출은 막았다고 할지라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제3국을 경유하여 바레인으로 수출할 가능성도 있고, 바레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와 법 개정 등이 앞으로의 숙제로 남아 있다.

무기는 어디서든 사용되어야 팔린다. 그래서 무기산업은 전쟁과 분쟁, 안보 불안을 먹고 자란다. 무기가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세계는 점점 더 평화와 인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루탄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던 그것의 목적은 공권력이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의 본질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랍의 봄 이후 민주화 시위가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은 한국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독일 등의 최루탄 생산업체에게는 블루오션이었을 것이다. 그곳의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면 쏠수록, 최루탄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바레인 수출로 벌어들인 125억 원의 돈은 최루탄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이들의 핏값으로 낸 이득이다.

유튜브에 올린 방사청 앞 기자회견 영상에는 아랍어로 된 댓글들이 여러 개 달렸다.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에 넣어보니 대부분 ‘연대해줘서 고맙다, 제발 한국산 최루탄 수출을 막아달라’ 등의 내용이었다. 트위터에는 내 가족과 친구가 최루탄으로 다치고 있다는 절박한 멘션들이 달렸다. 아랍어 댓글들과 컬러라는 점만 빼고 한국의 80년대 풍경과 별다를 바 없는 바레인의 사진은 오늘도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누군가의 생생한 고통을 담보로 벌어들이는 외화를 환영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수영 | 경계를넘어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www.withoutwar.org 에서 발행하는 계간 <전쟁없는세상>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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