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art_1400551017

Published on 5월 28th, 2014 | by 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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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대선, 과연 민주주의 알리는 봄의 교향곡일까?

흔히 선거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건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한 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게 된다는 의미일 뿐, 단순히 선거를 무사히 치렀다고 해서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다.

물론 오랜 갈등과 분쟁, 그로 인한 폭력에 시달려온 나라의 경우에는 선거를 치렀다는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다. 어쨌든 총칼과 주먹이 아닌 유권자들의 붓두껍으로 권력을 결정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뜻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2001년 미국과 나토가 무력으로 탈레반 정권을 몰아낸 뒤, 강산이 한 차례 바뀌도록 여전히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선거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토록 고대하던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아니면 낡고 부패한 체제에 민주주의의 외피만 덧씌워줄 뿐인 요식행위일까?

지난 4월 5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34개 주의 지방의회 선거가 동시에 치러졌다. 그중에서 나라 안팎의 지대한 관심을 끌어모은 건 아무래도 2001년 이후 세 번째로 시행된 대통령 선거였다. 3회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 때문에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출마할 수 없게 된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건네받은 투표용지에는 모두 11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막판에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인 압둘 카윰 카르자이를 비롯한 세 명의 후보가 사퇴하면서 최종적으로 남은 후보는 8명이었다. 그 가운데 잠정적인 개표 결과 1위는 44.9%를 득표한 압둘라 압둘라 후보, 2위는 31.5%를 얻은 아시라프 가니, 그다음은 11.5%의 잘라이 라술 순이었다. 즉 1차 투표에서는 아무도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거법에 따라 1위와 2위 후보가 다시 결선 투표를 치러야 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프간 독립선거관리위원회(IEC)는 이미 6월 7일로 결선 투표 날짜를 공표한 상황이다.

그러나 상당수 아프간 국민들과 전문가들은 현재로써는 선거가 결선 투표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아주 크다고 예상한다. 아니, 어떻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바로 탈레반의 위협과 정치적 합종연횡의 가능성, 그리고 철군 시간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우려 때문이다. 먼저 탈레반의 위협부터 들여다보자면,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는 6월부터 8월까지는 전통적으로 탈레반 반군들이 점령군과 아프간 정부를 상대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는 이른바 ‘전투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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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당일 수백차례의 탈레반 공격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탈레반 세력은 이번 대선이 서구 열강과 그 앞잡이들이 벌이는 정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일찌감치 선거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물론 그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더라도 미국과 카르자이 현 정부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선거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철저한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며 선거 자체를 붕괴시키려고 애써왔다. 1차 투표 때만 되돌아보더라도 애초 아프간 국방부는 선거 당일 약 160여 차례의 탈레반 공격과 폭력 행위가 보고되어 오히려 평소보다 더 ‘평화로운 하루’였다고 자축한 바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위세가 강한 남동부 7개 주에서만 347회의 공격이 있었다는 미국 등의 보도가 잇따르자, 며칠 뒤 그들은 690회로 통계를 수정해 발표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유권자와 투개표 종사자, 선거 감시단원, 치안 병력이 그 날 하루 지장을 찍기 위해 얼마나 큰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예정대로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면 앞으로 똑같은 위험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7월 라마단을 앞두고 탈레반이 가장 기세를 올린다는 전투 시즌에 말이다.

사실 이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거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지만, 두 후보를 비롯한 정치 세력에게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고민일 수 있다. 그보다 그들에게 더 부담스러운 건 바로 전부를 얻으려다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1차 투표의 잠정 개표 결과가 발표된 뒤, 두 후보는 하나같이 각자의 승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에서 투표용지가 다 떨어져 유권자들이 대거 발길을 돌리거나 가짜 표를 무더기로 투표함에 채워 넣는 일 따위의 선거 부정이 없었다면 자신이 과반수 득표로 1위를 했을 거라는 게 그 근거였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과 막후 협상을 통해 중도 사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과반수에 40만 표가 못 미쳤던 압둘라 압둘라 후보는 3위나 4위 후보 중 한 사람의 지지 선언만 이끌어내도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고, 아시라프 가니는 그에 비해 다소 힘겹기는 하지만 3위와 4위 후보를 모두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경우 100만 표를 추가로 얻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법 때문이다. 반대로 이미 탈락한 후보들은 줄만 잘 서면 차기 정부에서 자신과 측근들이 요직을 꿰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11일 일요일, 3위 후보였던 잘마이 라술과 1.6%의 득표로 6위를 했던 굴 아그하 셰르자이가 카불의 호텔에서 압둘라 압둘라의 손을 꼭 잡고 지지 선언을 하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정치적 짝짓기는 가능성이 아닌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 2위를 한 압둘라와 가니 둘 중 하나가 막판까지 이어진 짝짓기에 실패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냥 사퇴를 선언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상대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물론 차기 정부에서 일정 정도 권력의 파이를 나눠 가지기로 커튼 뒤에서 협상을 끝내놓은 뒤에 말이다. 이는 정확히 지난 2009년 대선에서 2위를 차지했던 압둘라 압둘라 후보가 했던 선택이었다. 그가 결선투표를 코앞에 두고 사퇴하면서 하미드 카르자이가 자동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카르자이는 압둘라의 지지기반인 북부 동맹 출신들을 대거 중용하는 ‘연합 정부’로 화답했던 것이다.

6월7일 결선투표 제대로 이뤄질까

결과적으로 결선투표까지 가든 안 가든, 이렇게 각 후보들과 정치 세력 간의 합종연횡을 통해 선거 과정을 ‘무난히’ 마무리 짓고 하루빨리 차기 대통령을 확정 짓고 싶은 건 그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가 강력히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올해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나토군으로 구성된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병력을 대거 철수시켜 전투 임무를 종료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약속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의 전쟁을 벌여놓고 미래의 영향력을 위한 지렛대 하나 없이 그냥 떠나올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미국 정부는 양자 간 안보협정(BSA)을 통해 최소 1만 명 이상의 미군을 아프간 군경 훈련과 자문 역할 명분으로 남겨놓을 계획이다. 그런데 작년 11월 말,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돌연 협정의 서명을 거부하는 바람에 애초의 그런 계획이 불투명해지게 됐다. 그나마 오바마 정부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압둘라와 가니 후보 둘 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하는 즉시 협정에 서명할 것을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그런데 만약 결선투표에서 박빙의 승부가 연출되고, 패배한 후보가 선거 부정을 이유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버티는 사태가 연출된다면? 당연히 아프간 정국은 다시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테고, 애초의 철군 시나리오 또한 뒤죽박죽되어 버릴 수 있다. 이미 아프간 주둔 미-나토군 최고 사령관인 조지프 F. 던포드 장군은 9월이 안보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데드라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6월 7일 결선투표를 치른 뒤 이번처럼 개표와 검표에 최소한 한 달 넘게 소요되고 혹시나 선거 부정과 불복 시비까지 일어나는 날에는 미국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시간이 촉박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아마 탈레반은 자신들이 평소 즐겨 하는 말을 다시 되뇌며 그런 상황을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에게는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게다가 협정이나 철수 시간표도 시간표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철수의 명분과 모양새다. 애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직접적인 명분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소탕이었다, 그러나 그 뒤 13년간이나 참혹한 전쟁을 이어오면서 그 명분은 어느새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로 바뀐 지 오래다. 만약 이번 선거가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아프간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미국 정부는 “이제 저들에게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으니, 우리의 임무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그나마 체면을 덜 구기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두 후보와 여러 정치 세력이 뒤엉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아수라장이 연출된다면? 결국 하나도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소중한 목숨만 수없이 희생시킨 채 돈만 무지하게 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 국내외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게 불 보듯 훤한 것이다. 1차 투표가 끝난 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드디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선거’라며 높이 칭송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지금 미국 정부로서는 누가 당선되느냐보다는 얼마나 ‘민주적인’ 모양새로 선거가 마무리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민주주의 선거 후보 자격 의심스러운 인물들

그러나 과연 이번 선거가 오바마가 바라듯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이종교배 사례로 모두가 박수를 보낼만한 선거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안타깝게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겠다. 일단 후보자들의 면면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압둘라 압둘라를 비롯해 후보자 대부분은 과거 무자헤딘(전사)들을 이끌고 대 소련 항쟁에 참여했다가 이후 소련군이 물러간 뒤 피 튀기는 권력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온갖 살인과 약탈,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군벌 출신이다. 또한 굴 아그하 셰르자이는 칸다하르의 마약상이었고, 4위를 한 라술 사야프는 9.11의 설계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멘토이자 오사마 빈 라덴을 아프간으로 불러들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구 언론에서는 흔히 미국 콜럼비아 대학 박사 출신에다 세계은행에서 일한 경력을 가진 아시라프 가니 전 재무장관을 가리켜 ‘유일하게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후보’라고들 하지만, 그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한 압둘 라시드 도스툼을 못 본 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는 2001년 침공 당시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싸우다 포로로 잡은 탈레반 전사 2000여 명을 컨테이너 트럭에 가둬놓고 죄다 질식사시켰던 ‘인간 백정’이었다. 이런 인물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그중 한 명을 고르라고 하는 선거를 누가 감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을까?

하물며 절차적 정당성은 또 어떤가? 온갖 부정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지난 대선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제선거 감시단과 외신이 지켜보고 있었던 카불과 몇몇 대도시의 이야기일 뿐이다. 외신 기자로는 거의 유일하게 아프간의 외딴 지방까지 취재했던 매튜 에이킨스와 애넌드 고팔에 따르면, 시골 지역에서는 투표소가 아예 문을 열지 않거나 사전 통고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다든지 몇몇 지역 유지들이 투표함에 뭉텅이로 표를 채워 넣은 사례가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5년 전 31%였던 투표율이 그 두 배에 가까운 60%까지 치솟게 된 데에는 바로 그런 비밀도 한 몫을 차지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새벽부터 투표소에 줄지어 늘어선 채 몇 시간을 기다려 선거에 참여한 남녀노소 아프간 유권자들과 선거 종사자들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또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것은 단순한 시민적 권리의 행사를 넘어선 용감한 결단이자, 어떤 폭력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특히 전체의 36%에 달하는 높은 여성 투표율과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는 자신과 가족과 이웃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고픈 그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직 군벌과 마약상, 외세의 대리인들만이 경쟁할 수 있는 고비용의 선거에만 국한되는 체제에서는 시민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의를 보고 싶다면, 우리의 눈길과 마음은 결국 아프간의 시민사회와 여성, 노동조합, 청년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2014년 5월 20일자로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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