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Iraqiprotest

Published on 7월 16th, 2014 | by 경계를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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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라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라크 내전은 부시와 블레어가 창조해낸 ‘새로운 현실’의 결과물

* 이 글은 민중언론 <참세상>(www.newscham.net)에 2014년 7월 15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러니까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년 반이 지났을 무렵에 미국의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는 두고두고 곱씹어볼만한 내용을 담은 기사 하나가 실렸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이자 작가인 론 서스킨드가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의 최고 핵심 측근과 나눈 대화를 전한 그 기사에 따르면, 당시 인터뷰 상대방은 서스킨드에게 이렇게 단언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제국이 됐습니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현실을 만들어내죠. 당신들이 그 현실을 연구하는 동안, 우리는 재차 행동에 나서 또 다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나중에 해당 발언의 주인공은 부시 대통령의 책사였던 칼 로브 선임정치고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의 장담은 10년이 지난 2014년 오늘, 전혀 허풍이 아니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지난 달 중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라는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조직이 모술을 비롯한 이라크 북서부의 주요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해가면서 시리아 남동부에서 이라크 북서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에 이슬람국가(IS)의 설립을 선포했다. 그 틈을 타 이라크의 쿠르드인들은 재빨리 페슈메르가 민병대원들을 동원해 키르쿠크와 디얄라 지방 북동부 도시들을 장악함으로써 독립된 쿠르드 국가 건설이라는 오랜 염원을 이룰 꿈에 잔뜩 부풀어 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 지역을 나눠가지기 위해 맺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토대로 그어진 오늘날의 중동 지도는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가르던 국경은 무의미해졌고, 단일 국가로서의 이라크는 사실상 세 개로 쪼개졌다. 설령 이라크 중앙정부가 이란과 미국, 러시아라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조합의 동맹 세력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이슬람국가를 물리친다 할지라도, 한 번 시작된 거대한 정치적 지각 변동은 혁명수비대나 무인기, 수호이 전투기 따위로 결코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제국이 된’ 미국은 이라크 침공과 점령이라는 ‘행동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애초에 꿈꿨던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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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출처: 프레스티비 화면캡처]

1,400년도 더 된 수니와 시아파의 대립,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내전은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과 뒤이은 점령이 빚어낸 직접적인 결과이다. 아무리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우리는 현 상황을 초래한 게 우리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강변하더라도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간혹 의문을 제기해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잘 안다. 아니, 사담 후세인 때도 수니파 군대가 시아파와 쿠르드인 수십만 명을 학살 했었잖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라져서 서로 미워하고 싸운 게 1,400년도 더 된 일인데, 그게 왜 부시와 블레어 때문이지? 하는 의문 말이다.

그런 의문들은 그 자체로는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이슬람을 창시한 선지자 무함마드는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원칙을 정해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숨진 뒤 이슬람공동체는 무함마드를 바로 옆에서 보좌했던 동료 네 명을 차례로 지도자로 선출했고, 그들은 흔히 ‘정통 칼리프’라 불린다. 그런데 무함마드의 사촌이며 사위이자 4대 칼리프였던 알리가 갑자기 암살되면서 이슬람 공동체는 기존의 원칙에 따라 새 칼리프를 지명하거나 선출하길 원하는 사람들(수니파)과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의 가문 출신이 칼리프 자리를 물려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시아파)로 나뉘게 된다. 그 와중에 또 다시 무함마드의 손자였던 후세인이 오늘날 바그다드 남서쪽의 도시 카르발라에서 무참히 학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지게 된다. 그 때부터 시아파들은 수니파를 증오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슬람 종파갈등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뒤이은 중동의 봉건왕조들은 비록 억압적이고 부패했을망정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 간의 갈등을 이용하는 짓은 감히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민감하고 폭발력이 강한 뇌관인 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에서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연 건 오토만 제국과 영국이었다. 1500년대 중반부터 지역 전체를 지배하던 오토만 제국은 이라크를 통치하는데 있어 바그다드와 그 북쪽의 수니파들을 지배계급으로 우대하고 양성했다. 반면 오토만 제국의 억압적인 통치에 대한 반발로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대거 시아파로 개종했던 남부의 주민들은 점점 하층민으로 전락해갔다. 1차 대전이 끝난 뒤 오토만 제국을 강제로 해체시키고 이라크를 식민화한 영국 역시도 그런 구도를 그대로 이어갔다. 정부의 고위 관료들과 장교, 상인, 지주들은 모두 수니파로 채워졌고, 시아파들에게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철저히 차단된 것이다.

종교/민족적 대립, 본래 정치적 필요와 지역 역학에 따라 유지 강화

1968년에 쿠데타로 집권을 시작한 바트당과 사담 후세인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표방한 바트당은 이슬람주의의 반대편에 선 세속주의 정당이었음에도 종파 간 차별과 불균형 구도만큼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여기엔 사담 후세인 자신이 수니파란 점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라크와 나란히 중동의 맹주를 꿈꾸던 경쟁국가 이란이 시아파 국가란 사실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던 걸로 여겨진다. 이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는 이라크 사회가 전체적으로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다는 점, 그리고 절대 다수가 수니파 이슬람이긴 하나 종교적 정체성보다는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강한 북부의 쿠르드족들도 후세인 치하에서 시아파만큼이나 억압과 학살, 차별에 시달렸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담 후세인은 시아파와 더불어 쿠르드족들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암암리에 이란의 편을 들었다는 강한 의심을 가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 이라크에서 수니파 대 시아파, 수니파 대 쿠르드의 대립 구도는 종교나 민족 그 자체에서 오는 갈등보다는 지배세력의 정치적 필요와 지역의 역학관계에 따라 유지되고 강화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종파간의 불평등과 차별 구도가 계속 유지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런 갈등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세인 시절 이라크에서 탈출해온 망명객 출신의 사미 라마다니가 영국의 가디언지에 기고한 글을 부분적으로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1970년대까지 이라크의 정치조직들은 거의 모두가 세속적이었고, 지지자들을 끌어들일 때 종교를 구분하지 않았다…이라크의 모든 부족들 내에도 수니파와 시아파가 골고루 분포해 있었고, 도시마다 두 종파가 서로 뒤섞여 살았다. 정권 차원의 잇따른 분할 통치에도 불구하고, 두 공동체는 놀랍도록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현대 이라크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종파 간, 인종 간 긴장이 형성된 것은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점령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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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에 착수하며 악수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이라크 점령 후 본격적인 분할통치

라마다니의 말대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뒤 과거 영국 제국주의의 분할통치 전략을 그대로 활용했다. 단지 이번엔 수니파와 시아파의 위치가 뒤바뀐 게 차이라면 차이였을 뿐이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이라크 수니파들을 무력화시키면 점령에 대한 저항이 자연스럽게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바트당 제거 정책(de-Baathification program)’이란 명분하에 기존의 정부 기관들과 군대를 해체하고, 국유기업과 사회복지시설,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바트당 출신의 수니파들을 솎아내 해고했다. 따라서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의 의무적으로 바트당에 가입했던 수십 만 명의 수니파들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2005년에 치러진 총선을 통해 시아파와 쿠르드족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와 의회를 출범시켰다. 자연히 수니파들은 극심한 소외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고, 그런 불만은 이듬해 2월 수니파 게릴라들이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인 아스카리야 황금 돔 사원을 폭파하면서 수니파들 내에서 ‘미국의 꼭두각시’라 여겨지던 시아파를 직접 겨냥하게 된다.

2006년 여름 내내 한 달 평균 3천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유혈이 낭자했던 당시의 1차 내전은 미국 정부가 부랴부랴 약 3만 명의 미군을 증파하는 한편, 수니파 내에서 온건한 성향의 사람들을 끌어 모아 ‘이라크 각성운동’ 같은 세력을 조직해 수니파 게릴라들에 맞서게 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하면서(부시 정권의 핵심들이 실제로 손자병법을 공부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2007년 말 무렵에야 비로소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를 두고 당시 부시 대통령은 미군의 증파가 성공을 거둔 것이라며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었으나, 실제로는 이후 다가올 두 번째 내전의 더 큰 불씨를 키운 것에 불과했다. 증파된 미군들은 맨 먼저 바그다드에 주둔하던 수니파 민병대들의 소탕과 무장 해제에 나섰고, 따라서 그 전까지 바그다드 인구의 45%를 차지했던 수니파 주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방패막이 사라진 상태에서 시아파 민병대원들에 의해 대거 ‘청소당한’ 뒤 도시 서쪽의 한구석으로 내몰리거나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모술(!)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부상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그 이후로 한동안 ‘메소포타미아의 알 카에다(al-Qaeda in Mesopotamia)’ 같은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 세력들은 간간히 터져 나오는 자살폭탄 테러 소식이나 유튜브, 트위터를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이라크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런 와중에 그들에게 획기적인 반전의 돌파구가 찾아왔다. 2011년 이웃 시리아에서 반정부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시리아에서 그들은 한 때 정부군이었다가 반기를 든 탈영병들로 주로 구성된 ‘자유시리아군(FSA)’과 도시의 자유주의 청년들, 그리고 알 카에다로부터 공식 프랜차이즈를 인정받은 ‘알 누스라 전선(Jabhat al-Nusra)’ 같은 이슬람주의 조직들과 뒤섞여 아사드 정부군에 맞서 싸웠다. 정부군과의 전투가 계속될수록 그들은 반군 내에서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미 이라크에서의 내전을 경험해본 그들은 다른 반군 세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조직적이었고 체계적인 사실상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시리아에서는 이라크 내전 때와는 달리 풍부한 자금과 무기를 외부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 출처는 다름 아닌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축출을 바라는 미국과 그 걸프 동맹국들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정부, 그리고 쿠웨이트의 부유한 수니파 억만장자들이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적절한 심사를 거쳐” 시리아의 ‘온건파’ 반군들만 지원하고 있을 뿐,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에게는 무기와 자금이 흘러들어가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단일한 지휘체계가 없는 반군들 내에서 ‘온건한’ 반군과 급진 이슬람주의 반군을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의 언론재벌 맥클러치에서 운영하는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중간 관리자들은 엑셀 파일에다 대원들의 가족 숫자까지 꼼꼼히 기록해뒀다가 전투 중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히면 거기에 맞게 보상금을 지급할 정도로 기업화되고 세련된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은 다 어디서 났을까? 그들이 모술의 중앙은행에서 4억2천5백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과 금괴를 확보한 건 그 한참 뒤인 지난 6월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즉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금고에서 흘러들어온 돈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감과 전투력을 완전히 회복한 이슬람국가 조직은 점차 시리아의 같은 반군들에게도 총부리를 겨누고 주요 도시에서 쫓아내기 시작했다. 알 카에다의 1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그런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반군 세력에서 ‘파문’시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제는 실체조차 모호해진 알 카에다 따위에 신경 쓸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축출만이 아니라 시리아와 이라크를 아우르는 이슬람국가의 건설이라는 더 큰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지도에 따르면 그들은 앞으로 5년 내에 중동 전체와 북아프리카, 스페인, 발칸반도,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까지를 그 영토로 하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건설할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의 명칭이 애초의 ‘이라크 이슬람국가(ISI)’에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를 거쳐 다시 최근에 ‘이슬람국가(IS)’로 바뀐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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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 이라크인들이 정부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인디펜던트 화면캡처]

‘이등시민’으로 전락한 수니파에 대한 누리 알 말리키 정권의 탄압

한편, 2006-7년 내전에서 북부의 모술과 티크리트, 서부의 팔루자와 라마디 등지로 쫓겨났던 수니파 주민들은 어떻게 됐을까? 한 때 전문직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미국이 그들에게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고 선언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이등 시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2010년 미군이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던 무렵 수니파 주민들의 실업률은 무려 60%에 달했고, 모술의 전기는 여전히 하루에 2시간 이상을 가지 못했으며, 상하수도와 도로는 망가진 상태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들은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되자,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 시위처럼 주요 공공장소에 시위 천막을 설치하고 공공기관을 점거하는 등 대중적인 저항운동을 조직해나갔다. 주된 요구는 수니파에 대한 차별을 중단하고 전면적인 재건을 실시하라는 것과 정치적 반대파를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반테러법을 철폐하라는 것, 그리고 사형제 폐지와 부패 척결 등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의 누리 알 말리키 정부는 그들의 요구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13년에 이미 석유와 가스 수출로 인한 정부의 수입이 1천억 달러를 넘어서, 산술적으로는 전체 5백만 가구에 2만 달러(한화로 약 2천만 원)씩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재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사회기반시설 복구와 실업률 완화에 투입되는 돈은 극히 미미했다. 그 대신 주로 시아파로 구성된 35만 명 규모의 정부군 병력을 유지하고 훈련시키는 데만 최근 3년간 416억 달러를 쏟아 붓고, 미국으로부터 F-16 전투기 18대를 구입하는 데 40억 달러를 지출하는 등 정권의 안정화에만 힘을 쏟았다. 그와 동시에 수니파 지역에는 시아파 군인들을 대거 투입해 주민들의 대중시위를 폭력적으로 강제 진압했다. 자랑스레 시아파 휘장을 단 군인들은 주민들을 수시로 검문해 체포를 일삼으며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했다. 특히 2013년 4월 하위자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보안군이 실탄을 발포해 53명을 살해한 사건은 수니파 주민들을 완전히 정부와 군대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비폭력 저항운동의 원칙을 고수하던 사람들까지도 점점 무장투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ISIL의 북부 장악, 지역 민병대와 주민이 합세한 ‘다원적 도시반란’”

올해 들어 이슬람국가(IS) 조직이 거둔 놀라운 군사적 성공에는 바로 그런 부분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올 1월에 이슬람국가의 전투원들이 팔루자와 라마디의 일부를 점령했을 때도 이미 그 하루 전에 지역 민병대원들이 정부군을 몰아낸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달에 모술과 티크리트, 바이지 등이 차례로 반군들의 손에 넘어갈 당시에 불과 천명도 안 되는 이슬람국가 무장대원들이 정규군 4개 사단 5만 명을 단 이틀 만에 완벽히 제압할 수 있었던 것 역시도 지역 민병대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협력이 없었다면 군사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동 전문가인 후안 콜 같은 인물들은 최근의 사태를 가리켜 “사회주의 성향의 옛 바트주의자들이 (이슬람국가 같은 급진 이슬람주의 조직에)가담해 일으킨 다원적 도시반란”이라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먼저 흔히들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부터 설명하자면, 현재까지 파죽지세였던 이슬람국가(IS)가 바그다드를 비롯해 이라크 전역을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군사적으로는 바그다드 내부에 잠입한 전투원들이 도시 서쪽지역의 수니파 거주지역을 거점으로 무장투쟁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본대가 북부와 서부에서 공격해들어 가면서 전투가 격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중동 전체를 통틀어 7천여 명의 정규 전투원을 거느린 이슬람국가(IS)가 35만 명의 이라크 정부군과 10만 명에 달하는 시아파 민병대에 맞서 장기간 수도를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라크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란이 결코 그런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라마단의 시작과 동시에 선포된 칼리프 체제의 이슬람국가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처럼 하나의 국가로서의 실체를 가질 가능성 또한 극히 희박하다. 그건 누구보다도 이라크 북서부 수니파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말리키의 시아파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이슬람국가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7세기 유목 사회에 살았던 선지자의 말씀과 가르침을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걸 주민들이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이슬람국가(IS) 그리고 중동의 미래는?

그럼에도 이슬람국가(IS)로 대표되는 수니파 근본주의 세력들은 오래도록 지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주요 행위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서부의 수니파 지역은 설사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정부군에 의해 격퇴되든 아니면 수니파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다시 시리아로 쫓겨나든 간에 절대 2014년 6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중앙 정부의 영향력을 거부한 채 이슬람국가(IS) 조직과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독자적인 자치를 형성해가는, 마치 파키스탄의 부족자치주인 와지리스탄처럼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반면 쿠르드족은 이번 내전으로 가장 큰 승자가 될 전망이다. 그들이 기존의 자치지역에 속해있던 3개 지방에다 이번에 점령한 키르쿠크와 북동 디얄라 지방을 묶어 지금이라도 당장 쿠르드 독립국가의 수립을 선포해도 전혀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이는 2003년 이라크 침공 전만 하더라도 쿠르드 독립국가라면 강하게 고개를 내저어 온 터키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현재 터키는 쿠르드 자치지역 투자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올해 6월 4일에는 쿠르드 자치정부(KRG)와 터키 정부가 독자적인 파이프라인을 통해 쿠르디스탄의 석유를 수출하는 50년 계약을 체결하는 등 둘 사이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다. 터키의 정의개발당 정권은 이라크의 쿠르드를 경제적으로 종속시킴으로써 그들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한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그런 상황을 그냥 두고만 보고 있겠냐고? 글쎄, 애초부터 이라크를 종파와 민족의 경계를 따라 시아스탄과 수니스탄, 쿠르디스탄(스탄은 -의 땅이라는 뜻이다)으로 나누는 ‘소프트 분할’ 계획은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이 상원의원이던 당시에 제안했던 구상이라는 정도만 밝혀두자. 게다가 이라크의 시아파 중앙정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이란을 설득해 말리키 현 총리를 갈아치우고 수니파 정치인들까지 끌어들여 통합정부의 구색을 갖추게 하는 것 말고는 미국 정부가 현재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이라크의 이슬람국가 반군들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자니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쾌재를 부를 테고, 그냥 두자니 ‘아무 것도 안한다(doing nothing)’는 비난에 시달릴 테니까, 서둘러 특수부대 파병하고 항공모함 배치하는 것 말고는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최근 시리아 공군기가 국경지대에서 이슬람국가 반군들을 폭격하자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둘러 강하게 경고하고 나선 것도, 그리고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라크의 현 사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풀어야지 군사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선언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불어 미국과 함께 이슬람국가(IS)라는 괴물을 키워낸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옛날 자신들의 도움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성전을 수행했던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이 이후 사우디 왕가를 이슬람의 최고 적으로 규정하며 위협을 가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 것이다. 카타르는 한편 새로운 중동의 맹주를 꿈꾸며 부지런히 지역의 분쟁지역을 오가며 위험한 베팅을 계속해댈 것이다. 그러는 사이 중동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화약고인 상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추가로 수많은 무고한 목숨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시와 블레어가 만들어낸 ‘새로운 현실’의 실체인 것이다.

최재훈(경계를넘어 회원) 2014.07.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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