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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8월 26th, 2014 | by 경계를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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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누구를 편드는 게 아니라 전쟁범죄에 반대하는 것일 뿐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와 인터넷언론 참세상에 기고한 글입니다.

누가 평화를 두려워하는가?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 가자 침공이 좀체 수그러들 줄 모르던 지난 8월의 첫 날,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당신은 이스라엘 편인가 팔레스타인 편인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머리글로 올라왔다. 파키스탄 출신의 캐나다인이자 “무신론자 무슬림”인 알리 A. 리즈비란 인물이 <허핑턴포스트 유에스>에 기고한 글 “중동 분쟁에서 어느 편을 들지를 선택하기 전에 고려해야할 7가지(7 things to Consider Before Choosing Sides in the Middle East Conflict)”를 번역해 올린 거라고 했다.

대체 뭐라는 거야, 무신론자 무슬림? 일단 필자 소개에서부터 더운 한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이슬람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다. 전 세계 모든 무슬림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선언을 한다. “하느님(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다.” 이를 가리켜 이슬람에서는 ‘증언하다’란 뜻의 ‘샤하다’라 일컫는다. 그런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스스로를 무슬림이라 규정한다고? 그건 내게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었다’거나, 삼겹살을 좋아하는 채식주의자와 같은 수준의 모순어법으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필자 자신이 그렇다는데, 굳이 그걸 가지고 길게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글을 읽는 동안 점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만든 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범죄의 본질을 흐리는 그 내용의 교묘함과 “균형 있는 시각을 위해서 한번쯤 읽어 봐야할 글”이라는 일부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기본적으로 알리 리즈비의 칼럼에 대한 반박과 비판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글의 분량이 제한된 관계로 그의 주장을 일일이 여기에 옮겨놓을 수 없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추후에라도 리즈비의 칼럼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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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허피턴포스트 화면캡처]
중동 분쟁은 원천적으로 부족적이다?

먼저, 리즈비는 서두에서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지자가 만약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가족에게서 태어났다면 그도 열정적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했을 테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중동전쟁은 원천적으로 부족적인 면을 지닐 수밖에 없다. 지지하는 편을 정하는 행동은 이런 분쟁을 더 부채질하고 사람들을 양극화시킨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일방적인 예단일 뿐이다. 이번 여름에 전 세계의 수많은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반대하고 나선 게 그저 편 가르기를 하기 위함이었나?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축구 시합이 아니다. 세계 5위의 군사대국인 이스라엘이 F-16 전투기와 군함, 탱크를 동원해 서울의 절반 크기의 땅에서 사방이 포위된 채 고립된 채 살아가는 180만 명의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꼭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전쟁범죄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기에 이스라엘에게 학살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지지하는 편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도 있는 건 사실이다. 이스라엘 군이 3천 명의 주민들이 피신해있던 유엔 시설을 폭격해 아이들을 포함한 스무 명의 민간인들을 살해한 그 순간에도 끝까지 “스스로를 방어할 이스라엘의 권리”를 지지한 오바마 미 대통령(그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지)과, 이스라엘에게 추가로 2천 3백억 원에 달하는 군사원조를 지원하는 법안을 단 2주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미국 상하원, 해변에서 자신과 같이 축구를 하던 아이들 네 명이 이스라엘 군함에서 쏜 포탄에 맞아 숨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는 그걸 사실 그대로 보도한 자사 기자를 가자에서 철수시켰던 NBC 방송을 비롯한 미국의 친 이스라엘 언론이 바로 그들이다. 1962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시작한 이래로 미국 정부는 2013년까지 모두 130조원에 이르는 군사비와 각종 무기를 대부분 무상으로 지원해왔으며, 해마다 회계연도가 시작된 지 30일 안에 연간 3조원의 목돈이 한꺼번에 이스라엘 정부의 계좌로 입금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과 터전을 파괴하는 밑천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알고도 과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리즈비의 표현일 뿐, 사실상은 학살이다)을 “원천적으로 부족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정치선전(하스바라)의 틀 안에 갇힌 리즈비

아무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1. 유대인이 개입되면 왜 모든 게 악화되는가?”란 단락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리즈비가 편 주장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은 지난 2년 사이에 같은 무슬림들이 대부분인 자국민들을 18만 명 넘게 학살했고 아프리카에서는 아랍 무슬림이 50만 명 넘는 흑인 무슬림을 살해했는데 왜 유독 가자 침공에 대해서만 전 세계 무슬림(과 시민들)이 분노하고 아우성을 치냐는 것이다. 즉 그 바탕에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 이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주장인 건데, 그간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여온 정치선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주장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최근 발언을 잠깐 인용해 보겠다.

“시리아에서 17만 명 이상이 숨졌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말레이시아 항공기 피해자를 제외하고도 천 명 이상이 살해됐다. 그런데도 지금 이스라엘과 스스로를 방어할 그들의 권리 및 방식에 대해서만 엄청난 국제사회의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그 배경엔) 반유대주의(가 깔려있다는 혐의)를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 두 사람의 논리가 놀랍도록 일치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정책 가운데는 ‘하스바라’라는 개념이 있다. 완곡하게 표현하면 ‘설명’이란 뜻이지만, 사실상 정치선전이라는 의미이다.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 외교부는 민간단체들을 활용해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활발하고 공격적인 하스바라를 펼쳐왔다. 대한민국의 국정원이나 사이버 사령부처럼 단순히 인터넷에 정치댓글을 달고 리트윗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서구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하며, 기자들과 저명인사들을 이스라엘로 초청해 관광을 시켜준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지지자들이 된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기사에 반박글을 기고하고, 노먼 핀켈슈타인이나 노암 촘스키 교수 같은 ‘유대인 배신자들’의 강연장에 찾아가 야유를 퍼붓고 소란을 피운다. 물론 그들이 동원하는 논리는 사전에 이스라엘 정부와 학자들이 치밀하게 준비해 배포한 내용에 기초한다. 나는 리즈비가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건 그가 순수하게 자신의 견해라고 펼친 주장이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정치선전의 틀을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두렵다.

비극을 뒤섞어 본질을 희석시키기

시리아나 우크라이나 내전, 그리고 아프리카를 거론한 부분만 봐도 그렇다. 그의 말대로 국제사회가 그러한 비극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시리아는 단순히 나쁜 아사드 정부군이 선량한 반군과 시민들을 살해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시리아의 반군은 아마 리즈비도 그 잔인성에 치를 떨게 분명한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다. 그리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미 걸프국가들은 아사드 정권에 맞선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직간접적으로 제공해왔다. 다시 말해, 시리아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책임은 정부군과 반군, 국제사회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영토 확장 야욕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과거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절멸시킨 나치의 추종자들이 대거 포함된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도 공공연히 극우 민족주의를 선동하며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아프리카 운운한 부분은 아마 수단 다르푸르 내전을 가리키는 듯한데, 아랍 무슬림들이 흑인 무슬림들을 살해한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 관계에도 어긋날뿐더러 기본적으로 다르푸르 내전은 목축을 하는 아랍인들과 농경을 하는 아프리카계 주민들 사이의 물 분쟁의 성격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은 (다시 강조하건대)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진 점령자들이 피점령민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대량으로 학살하는 전쟁범죄일 뿐이다.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가 명백한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를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다른 복잡한 비극들과 마구 뒤섞어 버리는 행위는, 결국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을 계속 연장시키는 데 일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2. 왜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종교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걸까?”라는 대목은 분량관계상 짧게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중동 특파원인 로버트 피스크가 자신의 저서 ‘전사의 시대’에서 말했듯이, 나 역시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믿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불관용과 폭력과 증오를 부추기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는 일정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슬람만 보더라도, 리즈비가 인용한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동지로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알라는 그런 죄짓는 자를 인도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절대적인 진리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란 만큼이나 중요한 선지자 무함마드의 말과 언행(하디스)에서 “오, 사람들이여. 인류는 모두가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입니다.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결국 종교에서 차별과 폭력을 배제하고 화해와 관용을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침공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

자, 그럼 이제 사람들이 흔히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 즉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책임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 보자. 지금부터는 리즈비의 글을 인용하지 않고 나의 설명과 주장을 죽 이어서 펼쳐보도록 하겠다.

지난 7월 8일부터 본격화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잘 되짚어 보면, 우리는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이스라엘이 제시하는 군사작전의 이유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6월 12일 서안지구의 점령촌에서 세 명의 이스라엘 청소년들을 납치해 살해한 하마스에 대한 보복과 처벌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내 이스라엘 정부가 그들이 납치된 그 날 이미 살해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3주 동안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그들과 용의자들의 행방을 찾는다는 구실로 2,200여 채의 가옥을 무단으로 수색하고, 500명 이상을 체포했으며, 그 과정에서 8명의 주민들을 살해하는 ‘연극’을 벌였음이 다름 아닌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또한 하마스 지도부가 살해를 저질렀다는 증거도 전혀 없었다. 실제로 7월 25일자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 미키 로젠펠드는 하마스 지도부가 납치를 지시하거나 범행을 사전에 알지는 못했다며, 용의자들은 하마스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간 “고립된 조직(lone cell)”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터키에 망명 중인 하마스의 ‘고위’ 인사가 하마스의 납치 주도 사실을 인정했다는 8월 21일자 보도는 신빙성이 빈약해 무시해도 좋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 터널, 무장해제로 침공 이유를 수시로 옮겨가게 된다. 과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이스라엘이 내건 이유들은 명목상의 구실일 뿐, 그들의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간의 단결과 통합을 좌절시켜 독립 국가를 포함한 일체의 자결권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은 고립장벽과 점령촌 확대를 통해 완전히 병합하고, 남은 가자지구의 주민들은 어느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말대로 “(테러리스트라는) 작은 뱀들을 키우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을 모조리 죽이고 집을 파괴해” 모두 사라지게 하거나,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이 말했듯이 “감히 고개를 쳐들지도 못한 채” 유대국가의 이등 시민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칼럼에서 리즈비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이스라엘에서 시행한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한 이스라엘 군과 8천 여 점령민들의 2005년 가자지구 철수도 정확히 그런 목표 아래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2000년부터 시작된 2차 인티파다로 인해 급증한 점령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정부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가자지구는 철저히 봉쇄, 고립시키는 대신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병합에 집중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이스라엘과 서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감시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동 역사상 가장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에서 ‘감히 민주적인 자결권을 행사해,’ 이스라엘과 서구가 지지하는 부패하고 무기력한 파타 당이 아니라 하마스에게 압승을 안겨준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넘겨주기를 거부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일체의 원조를 끊고 경제제재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압박했다. 그와 동시에 가자지구의 파타 지도자인 마흐무드 다흘란을 부추겨 파타와 하마스 간의 내전을 유도했다. 그 결과, 2007년 6월 닷새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하마스가 파타 무장대원들을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하마스의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서안지구로 쪼개진 지금의 구도가 형성됐다. 물론 이스라엘이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약속했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간의 왕래는 철저하게 차단된 채였다.

“봉쇄를 풀지 않으면, 그냥 죽는 게 낫다”

그 때부터 가자지구는 현재까지 7년간 외부와 철저하게 봉쇄, 고립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육지와 바다, 하늘을 완전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전 총리의 핵심 참모인 도브 와인글라스의 “가자 주민들을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바싹 마르게 해야 한다”는 공언은 그대로 현실이 됐고, 영양실조와 빈혈, 장티푸스를 앓는 가자 어린이들의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유엔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가자지구 식수의 90%는 인간이 마실 수 없을 정도”였고, 실업률은 50%에 육박했다. 이번에 자신들의 머리 위로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가자 주민들이 “다들 이번 전쟁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봉쇄를 풀지 않으면, 그냥 죽는 게 낫습니다”(인권변호사 라지 수라니의 증언 中)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리즈비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 모든 상황의 책임이 궁극적으로 하마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로켓탄과 터널로 이스라엘을 계속 공격하고, 과거의 협정들을 준수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가 전하는 진실은 완전히 다르다. 하마스가 창설 이듬해인 1988년에 제정한 헌장에서 ‘이스라엘의 해체’를 위해 투쟁한다고 밝히고 있는 건 분명히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기록에 불과하고, 더 이상은 적절치 않다. 다만 내부적인 문제 때문에 바꾸지 않을 뿐”이라는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칼리드 마샬의 말에는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2006년 6월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가 미국의 ‘평화를 위한 유대인 로비’라는 단체의 대표를 통해 당시의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한 편지에서 “현 상황이 지속되면 지역의 혼란과 폭력만 부추길 뿐”이라며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적대행위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은 왜 역사에서 지워버리는가? 그래서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의 전 국장이었던 에프라임 할레비조차도 “어제의 악마였던 하마스가 오늘날 합리적인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는 그들을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했던 조언은 또 왜 무시했는가?

누가 평화를 두려워하는가?

실제로 하마스는 2008년 6월과 2012년 12월에 체결한 휴전 협정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오히려 먼저 협정을 어긴 건 언제나 이스라엘이었다. 가자 주민들에게는 외부로부터 생필품을 반입하기 위한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 국경 지대의 터널을 폭격해 하마스의 대응을 촉발함으로써 대규모 침공을 개시했던 2008년이 대표적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 4일, 하마스와 파타는 팔레스타인 통합 정부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양측은 총리와 부총리, 재무, 외교 장관 같은 요직을 중립적인 전문 관료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비폭력과 과거 협정들의 준수, 그리고 이스라엘의 인정을 약속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스라엘이 “방어의 칼날”이라는 작전명(Operation Protective Edge) 아래 가자지구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폭격과 침공을 시작하면서 하마스는 지난 19개월 동안 단 한 발도 쏘지 않았던 조잡한 로켓탄을 다시 이스라엘로 날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놓고 볼 때, 지금 이 순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진정한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건 과연 누구인가? 어느 한쪽을 편들기 위함이 아니라, 폭력과 증오를 부추기는 이들에게 우리가 반대하고 나설 이유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최재훈(경계를넘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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