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뉴스 aleppo-evacuation

Published on 1월 10th, 2017 | by 경계를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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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혁명에 찾아온 겨울

알레포를 빼앗긴 건 공습 때문만은 아니다

 기원 전 6세기경에 형성되기 시작해 한 때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카이로에 이어 오토만 제국에서 세 번째로 융성했던 도시. 그래서 그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으며, 불과 5년 전까지 시리아에서 가장 많은 230만 명의 인구가 북적이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아랍, 아르메니아, 쿠르드, 투르크멘, 이란의 혈통을 물려받은 이들과 이슬람,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를 믿는 이들이 서로 한 골목을 끼고 이웃사촌으로 살아오던 인종과 종교의 용광로. 이렇게 한 때는 중동지역에서 번영과 화합의 상징이었던 시리아의 알레포가 어느 샌가 살인적인 봉쇄와 학살의 대명사가 되어 ‘시리아의 스탈린그라드’라는 비운의 이름을 안게 된 지 4년 5개월여 만에 정부군의 수중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정부군이 2012년 7월부터 반군들이 장악해왔던 알레포 동부 지역을 상대로 러시아군의 공습과 레바논 헤즈볼라 및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체첸 등지에서 건너온 시아파 민병대의 지원을 받아 2016년 6월부터 재탈환 작전을 벌인 끝에, 지난 12월25일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마지막까지 반군지역에 고립돼 있던 약 5만여 명의 주민과 반군들에 대한 철수 작전을 마무리한 결과였다.

도시 전체의 역사에 비춰보면 짧고도 짧았던, 그러나 2차 대전 당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를 연상케 하는 좁은 구역에 갇힌 채 하루하루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공포에 떨어야했던 주민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길고 길었던 4년여의 시간동안 살해된 도시 주민들만 해도 3만1,000여 명, 시리아 내전의 전체 희생자 40만여 명의 거의 10%에 가까운 희생자가 도시 한 곳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들의 책임을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시리아·러시아 정부만의 책임일까

물론 좁은 지역에 갇힌 주민들과 구조대원, 병원, 학교를 가리지 않은 무차별 공습과 살육전을 벌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와 푸틴의 러시아 정부에게 그 일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한 차례 공습을 가한 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이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가 재차 공습을 가하는 러시아 공군의 이른바 ‘이중 타격(double tap)’ 전술은 그 자체가 전쟁 범죄라고 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또한 지역패권을 노리고 같은 시아파(라 일컬어지는) 시리아 정부를 도와 내전과 학살의 한 축을 담당한 이란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민병대도 비극의 책임에서 결코 비껴갈 수가 없다.

그러나 이번 알레포 전투와 오늘날의 시리아 내전이 ‘선한 자 vs. 악한 자’라는 단순한 구도로 설명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는 분석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대학생, 정육점 주인, 군인, 축구선수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다가 아랍의 봄 이후 아사드 정부의 폭압에 맞서 총을 들었고, 그래서 하나뿐인 목숨까지 잃어야했던 수많은 민주화 반군들의 희생 앞에서 차마 꺼내기 힘든 이야기이긴 하지만, 알레포를 정부군에게 뺏긴 데는 반군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인 것이다.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혁명은 자유와 빵, 인간의 존엄을 위한 그야말로 고귀하고도 감동적인 항쟁의 결정체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정부군의 총탄에 연신 쓰러지자, 진정 국민을 위한 군대이기를 택한 군인들이 대거 청년들과 합세해 ‘자유시리아 군(Free Syria Army)’을 구성하고, 아사드 대통령 가문과 종파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특권을 누려온 10% 남짓의 알라위 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종파와 인종들이 민주화 반군들의 편에 서는 과정은 그 자체로 대의를 위한 민중의 대단결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초기에는 관망하던 미국 정부가 결국 아사드 정권 축출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시아파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의 수니파 친미왕정들과 터키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일은 심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온건한 반군’을 돕겠다던 그들의 자금과 무기 지원은 이슬람국가(IS)와 알 누스라 전선, 아흐라르 알 샴(시리아 자유인 운동)같은 이슬람주의 반군에게로 집중적으로 흘러들어가 그들의 세력을 키워주는 결과를 낳았고, 그와 동시에 ‘순수한’ 민주화 반군들은 정부군과 이슬람주의 반군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면서 하나둘씩 죽거나, 실종되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해외로 망명하면서 그 힘이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알레포 전투를 이끌었던 반군 연합체인 자이쉬 할랍(알레포 군대) 역시도 지휘부에서부터 현장 전투원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주의 반군이 대부분 주축을 이뤘다는 사실이 바로 그런 현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들 이슬람주의 반군에 의한 주민들의 고통 또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그동안 정부가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파를 상대로 한 공개 처형과 납치, 고문을 수시로 자행했으며, 외신 기자들의 취재를 철저히 가로막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사실만을 골라 SNS를 통해 외부에 전파했다. 이는 시리아 정부를 (당연히) 비판하고 시리아 민중들의 항쟁을 지지해온 사람들, 특히 전 세계의 상당수 좌파들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논쟁적인 주장이지만, 시리아 정부의 일방적인 정치선전이 아니라 반군지역을 빠져나온 주민들의 경험담을 통해 상당부분이 확인된 진실이라는 게 본 필자의 견해다.

지금처럼이라면 민중들은 내전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나의 주장이 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인원과 전투력이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 무장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타 지역의 민주화 반군들이 목숨을 걸고 알레포 동부의 봉쇄를 뚫기 위해 달려가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는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는가? 지난 2014년 이슬람국가의 맹공을 영웅적으로 물리쳤던 시리아 북부의 좌파 쿠르드 인민방위대(YPG)가 알레포 반군들을 도우러 나서지 않은 이유는 또 뭘까? 무엇보다도 올 6월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공세가 시작되기 전까지 알레포 동부의 반군 장악 지역에 남아있던 주민들의 숫자는 25만 여명 가량이었던 반면, 바로 인접한 알레포 서부의 정부군 장악 지역 주민들의 수는 약 80만 명에서 150만 명에 달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줄까? 그들이 아사드 정부를 지지하거나 그 똘마니들이라서? 아니, 그들 대부분은 아사드 정부의 폭압에 반대하지만, 다른 종교와 다른 인종을 포용하기보다 배제와 제거를 통한 이슬람 신정일치 체제 건설을 목표로 한 급진 이슬람주의 반군에 대한 반감이 그보다 훨씬 더 컸던 건 아닐까?

이번에 알레포를 재탈환하면서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는 내전의 승리가 사실상 목전에 다가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영토를 다시 차지했다고 해서 그 민중들의 믿음과 지지까지 되찾았다고 믿는 건 커다란 오산이다. 그런 면에서 시리아의 오랜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면 반대편에 선 시리아 반군들에게 진정으로 뼈아픈 건 알레포란 도시를 빼앗긴 게 아니다. 설령 그것이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의 책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반군 전체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가슴 아픈 현실이다.

시리아 혁명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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